Tuesday, June 04, 2013

그들은 고통을 참고 낙망과 좌절을 하지 않으며 끝까지 견뎌 기필코 이루어내었지만 대부분 정치권력이다.
이것을 이루기 위한 배면과 관계되어진 가까운 사람들의 희생도 생각해봐야한다.



중국역사 9人으로부터 편지.....



운도 지지리 없는 놈이라고 하늘의 무심함을 탓하지마라
내가 수십년간 낚시를 벗하며 때를 기다리는 동안 
조강지처마저 나를 버리고 도망가 버렸다
검은 머리가 백발이 되고서야 문왕 서백을 만나 
은나라 주왕(紂王) 멸하고 주나라를 세웠다
나는 숱한 세월을 낚으며 늙은이가 되었지만 
결코 하늘을 원망하거나 포기않았고 
인내의 결실이었던 한번의 기회로도 천하를 얻을 있었다.
[ 주나라 태공망 강태공(姜太公) ]


용모가 볼품없어서 되는 일이 없다고 푸념하지마라
나는 어렸을때 보잘것 없는 외모때문에 
불량배의 가지랑이사이를 기어건너는 치욕을 당했고 
빨래터 노파의 밥을 빌어먹기도 했다
초패왕 항우는 나의 볼품없는 용모를 업신여겨 
범증의 천거를 번번히 거부하며 십년간이나 
말단벼슬아치 집극랑자리를 맴돌게했다
항우에게 실망하고 유방 밑으로 들어갔으나 
연전연승하며 '해하'에서 항우를 완전히 섬멸하고 
천하를 유방에게 안겨줄때까지 갖은 수모를 견뎌내야했다
나는 초라하기 짝이없는 몰골뒤로 
천하웅비의 뜻을 감추고 뭇사람들의 갖은 야유와 모욕을 참아내며 
기어코 전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장이 되었다
[한나라 회음후 한신(韓信) ]

한때 자존심과 명예를 짖밟힌 치욕을 당했다고 () 포기하지마라
나는 이릉장군을 변호하다 무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생식기가 짤리는 궁형의 치욕을 당하고도 목숨을 부지하였다
당시 궁형의 수치를 못참고 자살하는 者가 많았으나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못다 이룬 역사적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죽음을 선택할 수가 없었다
나는 거세된 남자가 모진 생명을 질기게 끌고간다는 
온갖 조롱을 참아내며 옥중에서도 저술을 계속하여 
마침내 <사기> 완성한 불세출의 역사가가 되었다
[중국최고의 역사가 사마천(司馬遷)] 


여자로 태어나서 하고픈 일을 못한다고 울고만 있지마라
나는 아버지 무사확의 후처소생 둘째딸로 태어나 
14살때 최말단 후궁 재인이 되어 당태종 이세민을 
가무로써 섬겼다
황궁생활초기 나의 경쟁자는 여자였으나 
비구니로 물러앉았다가 
태종의 아들 고종의 총애를 받으며 황궁으로 돌아와 
4명의 아들과 2명의 딸을 생산하며 황후가 부터 
나는 남자들과 힘겨운 전쟁을 시작했다
장손무기를 내쳤고 상관의를 처형하였으며 
심지어 나의 4명의 아들마저 차례로 버렸다
나이 67.. 
여자든 남자든 아무도 도전할 없는 철옹성을 만들고나서 
역사상 전무후무한 여제(女帝
성신황제(聖神皇帝) 되어 15년간 천하를 다스렸다
[당나라 여황제 측천무후(則天武后)]

집안배경이 나빠서 요모양 요꼴이 되었다고 변명하지마라
나는 오랑캐의 나라 원대말기 안휘성의 빈농 한족집안에서 태어나 
17살에 고아가 되어 탁발승으로서 가뭄과 기근에 찌든 
험악한 세상과 맞서야 했고 
전란통에 비적 무리의 일개 졸개가 되었을때 
아무도 나를 알아주는 이가 없었다
그후 혁혁한 전과를 올린 공으로 반란군의 2인자가 되어 
원나라 몽골군을 중원에서 몰아낸 후에도 
양반사대부집안의 멸시와 견제속에서 시달려야했다
나는 송곳하나 꼿을 땅이 없었던 빈농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고아가 되었을때 조차 부모를 원망하지 않았으며 
결국 몽골오랑캐를 몰아내고 
한족(漢族)천하를 회복한 명나라의 초대창업황제가 되었다
[명나라 태조 홍무제 주원장(朱元璋)]


나이가 어리다고 어미의 치마폭 뒤에 숨어 칭얼거리지마라
나는 8살때 황제가 되었고 13살때 결혼을 했으며 
14살때부터 스스로 친정(親政) 시작했다
응석을 부릴 겨를도 없이 오삼계,상가희,경계무의 삼번난(三藩亂)
제압하고 몽고를 평정했으며 티베트까지 원정했다
나는 어린 나이의 어리광도 모른채 
군주가 되어 61년간 천하를 호령할 있었다
[청나라 4 황제 강희제(康熙帝) ]

돈이 없어서 재기할 없다고 낙담하지마라
나는 미천한 집안에 태어나 아버지가 일찍 죽는 바람에 학업도 
못마치고 전장(錢庄) 들어가 똥오줌을 치우고 마루를 닦으며 
잔심부름으로 어린시절을 보냈다
빈손으로 사업을 일으켰고 다시 빈털털이가 되는 과정을 겪고 
겪었지만 내가 살아있는 아무리 빈손이라도 
언제든지 사업을 다시 일으켜 세울 있다고 믿었다
나는 한푼도 가진게 없는 가운데도 스스로의 재기를 믿었고 
내게 없는 것을 메꾸어주는 인재를 대함에 귀천을 가리지 않았다
상인이 되는데 보다는 사람이 
더욱 소중함을 일찍이 깨달았던 나는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장사의 "상성(商聖)" 되었다.
[청대말 거상 호설암(湖雪巖) ]


만년 2인자라고 보스자리에 대한 욕심으로 자신의 직분을 망각하지마라
나는 1935 준의회의에서 모택동을 모시고 만리장정을 
따라나선 때부터 죽는 그날까지 41년동안 2인자의 길을 묵묵히 걸었다
귀족가문에서 태어나 공산당초기 탑리더의 코스를 밟던 내가
가난한 농부의 아들 모택동을 중국혁명의 지도자로 추천하고 
스스로를 낮췄던 것은 인민의 마음을 움직이는 호소력이 그에게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총리시절 행정보고를 함에 모주석의 침상옆에 꿇어 앉아야했고 
방광암수술을 받고싶어도 毛의 허락이 떨어지지않아 
수술을 2년간이나 미루어야했다
방광암으로 죽어가는 초읽기의 시간속에서도 미일과의 수교
문화대혁명의 폐허속에 놓인 국가경제재건
등소평을 재신임하는 권력의 재편성을 위해 촌음을 다투었다
나는 사망하는 순간에도 " 죽어가는 나따위는 돌보지말고 
다른 아픈 동지들을 돌보시오"라는 유언을 남기며 
인민의 마음속에서 
영원한 1인자, 인민의 벗으로 다시 태어났다
[중화인민공화국 총리 주은래(周恩來) ]

잘나가다 넘어지고 재기했다 다시 쓰러진다고 괴로워하지마라
나는 문화대혁명때 반모주자파로 몰려 홍위병으로 부터 
공개비판을 당했고, 잠시 일어났지만 하방당하여 
강서성의 공장에서 4년간을 육체노동자로 버텨야했다
주은래 총리의 도움으로 복권되어 국무원 부총리로 재기했다가 
4인방의 농간에 다시 실각하고 가택연금까지 당해야했지만 
모택동사후 정국수습용으로 재기용된  
화국봉과의 5 권력투쟁끝에 최고실권을 장악했다
나는 세번 쓰러지고 네번 일어난 역전의 용사로서 
마지막 정치적 위기였던 천안문사태의 시련을 견뎌내고 
아무리 넘어져도 다시일어나는 오뚜기 부도옹 
개혁개방의 총설계사가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등소평(登小平)]


Thursday, April 11, 2013

장 콕토 - 귀



" 내 귀는 소라 껍데기 / 바다 소리를 그리워한다 "

Jean Maurice Eugene Clement Cocteau (1889.7.5-1963.10.11)

프랑스의 시인, 소설가, 극작가, 디자이너, 예술가, 영화 제작자




Monday, April 08, 2013

Kenny Kyungmi Kim

Thursday, May 31, 2012

<맹자> 고자장(告子章)

 "하늘이 어떤 인물에게 큰 소임을 내리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 심지(心志)를 괴롭게 하며 그 뼈와 근육을 수고롭게 하며 그 몸을 굶주리게 하며 그 생활을 궁핍하게 하며 어떤 일을 행함에 그 하는 바를 어긋나고 어렵게 하나니 이는 마음을 흔들어 참을성을 기르게 하고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일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Friday, April 20, 2012

봄.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 봄날은 간다.



...... 중략

     일제 강점기를 거친 텃인지 유독 봄맞이 행사로 벚꽃놀이가 하나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렇지만 과거 봄을 알리는 전령사는 벚꽃이 아니라 복숭아꽃, 즉 도화였다. 4월 복숭아꽃이 활짝 필 때,  우리 조상들은 '도화타령'을 아름답고 구슬프게 불렀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무릉도원이나 도원경이란 표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중국의 시인 도연명, 즉 도잠(365~427)의 '도화원기'에 등장하는 말이다. 어느 어부가 물고기를 잡다가 물길을 따라 내려오는 복숭아꽃의 향기에 취한다. 무언인가에 홀린 듯이 그는 복숭아꽃이 떠내려오는 물줄기를 거슬러 올러가 너무나 살기 좋고 아름다운 곳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이곳이 무릉도원, 혹은 도원경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도화나 벚꽃이 만드는 무릉도원과 같은 풍경의 이면에는 농업경제의 팍팍한 삶이 도사리고 있다, 꽃놀이를 마지막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농사일에 매진해야만 했다. 그래서 복숭아꽃 향기에 취해서 마시는 한잔의 술은 전쟁터로 나가기 직전의 축하연과 같이 비장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경기민요 도화타령의 밝은 리듬 뒤에 아련히 느껴지는 애잔함도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복숭아꽃이든 벚꽃이든 공통점이 있다. 바람이 불기라도 하면 너무나 쉽게 꽃잎들이 허공에 흩날려 버린다. 화려하고 장엄한 광경이긴 하지만,  또한 슬프도록 덧없는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바로 이 순간, 우리는 하늘을 가득 채우며 날아오르는 꽃잎들 사이로 파란 하늘을 보게 된다. 바로 그 파란 하늘이야말로 우리가 꽃놀이에서 얻으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꽃잎들은 하늘을 보라고 우리 앞에 화려한 장관을 연출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도화원기'의 어부가 꽃잎을 따라가다 무릉도원에 이르는 것처럼 말이다, 아름답게 날리는 꽃잎을 따라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면 앞으로 해야할 모든 일로부터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게 된다. 바로 이것이 4월을 들썩이게 하는  꽃놀이를  통해 우리가 얻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수직적 몽상'을 이야기했던 가스통 바슐라르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탑 근처나 나무 근처에서 높이의 몽상가는 하늘을 꿈꾼다. 높이를 생각하는 몽상, 수직성을 향하는 우리의 본능은 공동생활의 범속함에 의해 혹은 수평적인 생활상의 여러 가지 의무에 의해 죽어 있는 본능을 기르고 있다. 인간을 수직화시키는 몽상은 수많은 몽상 가운데서도 가장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다른 장소를 꿈꾸는 것처럼 잘 꿈꾸기 위한 확실한 방법은 없다. - '초의 불꽃
(La Flamme d'une Chandelle)'

     바슐라르는 인간이 수평적인 삶을 영위하는 존재하고 이해한다. 수평적인 삶은 우리가 앞이나 옆, 혹은 뒤만 바라보며 사는 모습을 묘사하는 개념이다. 수평적으로 보았을 때,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는가? 사람, 자동차, 건물 등등일 것이다. 수평적 삶은 결국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가정생활이나 사회생활, 즉 공동생활을 말하는 것이다. 공동생활은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다양한 관계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성이라면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직장 후배로서, 직장 선배로서, 아니면 동네 아저씨로서 다영한 방식으로 삶을 영위해야 할 것이다. 여성이라면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시어머니로서, 아니면 동네 아줌마로서 복잡한 삶을 능숙하게 살아내야 한다. 너무나 많은 배역을 능숙하게 수행하기 위해 대부분 사람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만 하다. 맡은 배역마다 정해진 역할이 있고, 타인들로부터 욕을 먹지 않을 정도로 그 역할을 나름대로  수행해야만 한다.

    수평적 삶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달성하기 보다는 타인이 원하는 것을 달성하기 바쁘다. 그렇기 때문에 수평적 삶은 숨이 막힐 정도로 갑갑함을 우리에게 줄 수 밖에 없다. 이럴 때 가끔 우리는 하늘을 올려다보기 마련이다. 마치 물속에 빠져 숨이 막히기라도 한것처럼 말이다.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싶은 강한 욕망이 꿈틀거리는 것도 바로 이 순간이다. 어쩌면 이것은 자유를 꿈꾸는 인간의 본능적인 감각일지도 모른다. 거미줄처럼 얽혀서 우리를 욱죄는 모든 관계망을 찢고 자유를 되찾고 싶은 거이다. 그럴 때 우리는 수평적이 아니라 수직을 꿈꾸는 바슐라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 높이를 생각하는 몽상'에 빠져들게 된다. 집 뒤의 산에 올라가 자신이 살던 마을과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던 적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그렇다. 자신이 얼마나 아옹다옹하면서 살았는지를 자각하기위해, 우리는 높은 고도감이 필요한 법이다.
 
      바슐라르의 말처럼 서양의 경우 교회나 성곽의 타브 혹은 힘차게 솟아 있는 나무가 하늘을 올려다보라고 유도하는 역할을 수행했다면, 동양의 경우 벚꽃이나 복숭아꽂이 그럼 역할을 대신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벚꽃과 복숭아꽃이 탑이나 나무보다 더 심오하지 않는가?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들은 하늘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우리가 땅 위 수평적 세계에 살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하늘을 가득 채우며 우리에게 푸른 하늘이 있음을 가르쳐주었던 꽃잎들은 아름다운 운무를 마친 뒤 조용히 그리고 비장하게 땅으로 내려올 수 밖에 없다. 그렇다. 가끔이라도 하늘을 보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우리의 수평적 세계를 영원히 떠나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수평적 세계를 살아낼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서일 뿐이다. 높은  산에 올라가면 우리는 자신의 삶을 낯설게 성찰할 수 있는 차이, 혹은 고도감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산에 오래 머무르려고 해서는 안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산에서의 생활도 친숙한 생활, 즉 수평적 삶으로 변모할 테니까 말이다.

      우리 조상들은 도화타령을 부르며 새로운 농사철을 맞이하는 힘을 얻으려고 하였다. 벚꽃 놀이를 떠나는 우리 이웃들도 무의식적으로나마 조상의 지혜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지 않은가. 하루하루 살기가 버겁거나 혹은 미래에 떠나는 우리 이웃들도 무의식적으로나마 조상의 지혜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지 않은가. 하루하루 살기가 버겁거나 혹은 미래에 더 큰 고난이 예견될수록, 우리는 흩날리는 벚꽃들 사이로 무릉도원처럼 펼쳐놓은 푸른 하늘을 가슴 한쪽에 품을 필요가 있다......중략


바슐라르 (Gaston Bachelard 1884~1962)
우리에게 문학비평가로 유명하지만 사실 과학철학에 크게 이바지한 철학자다. 과학 활동의 해명하다가 바슐라르는 인간이 가진 상상력, 즉 몽상의 힘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통찰했다. 후에 그가 지수화풍 즉 땅, 물, 불, 그리고 바람과 관련된 인간의 상상력을 해명하려고 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저서로 '새로운 과학정신(Le nouvel esprit scientifique)' '대지 그리고 휴식의 몽상(La terre et les reveries du repos)' 등이 있다.

차이 (difference)
낯선 곳으로 여행 가서 그곳에 익숙해지면, 우리는 자신이 떠나온 곳을 낯설게 성찰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차이의 경험이다. 차이의 경험이 없다면, 우리는 자신이나 익숙한 것을 반성할 수가 없다. 전혀 이질적인 다른 나라에 갔을 때에만 우리는 자신이 어떤 언어를 쓰고 있었는지, 지금까지 무엇을 먹고 입었는지, 나아가 자신의 사유 패턴까지도 낯설게 성찰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차이의 경험은 매우 친숙해진 자신을 성찰하는 데 불가피한 것이다.
독서나 여행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강신주의 철학으로 세상읽기 중에서. 2011. 4. 20 꼭 1년전 동아일보에서
<철학자,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철학, 삶을 만나다' 저자>

Wednesday, January 04, 2012

7년의 수행을 시작해보려한다.

작년 이맘때 계획한 것을 보면서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끝에 두 가지 빼고는 1년이 지났는데 제대로 지키지 못해 또 반복한다는 것.

그중 '홈페이지는 2월 안에 끝내자.'
정말 오늘 마음먹고 계획했었는데 1년 전과 똑같이 계획하고 있는 나.
수정 업데이트니까 완전히 nothing은 아니라고 위안을 해볼까해도 이미 2년을 엎어놓았다가
작년에 간신히 홈페이지를 만들었지만 작품을 제대로 업로드한 것이 아니라 늘 사람들에 주소 공개를 꺼리는 반쪽짜리 홈페이지...

몸에 베이는 습관은 결국 그 사람의 인생을 만드는 거다.

나의 문제를 넘어서 내 아이들에게 적어도 나처럼 살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습관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가 아니라 '우리 엄마가 달라졌어요' 부터

7년 수행. 시작하자.


내 삶에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2011년 신년의 다짐으로 부터

책은 살때 신중히 고려하고 사놓은 책부터 다 읽자.

문서는 쌓아두지 말고 잘 분류해서 정리하고 다 버리자.

홈페이지는 2월 안에 끝내자.

장비는 잘 정리해 두자.

잔반 처리하지 말자.

최소 1주일에 두 번은 운동하자.

약속은 신중히 하고 철저히 시간 안에 지키자.

메일의 답은 짧드레도 즉각 하자.

Thursday, November 17, 2011

잃어버린 것


불은 몸무게 만큼 서늘한 정신
그 서늘함, 그 맑음

그것은 어디에?
그것을 대치한 욕심과 습관화된 분노.
늘 혼자만 일 다하는 것 같은 억울한 마음.

그냥 '희생'이란 것이 내 안에 단박 들어올 수는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