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rch 27, 2007

Homage to Nam June Paik



Chelsea의 James Cohan 갤러리에서 http://www.jamescohan.com/index2.php
특별 이벤트인 Fluxus Performance를 보았습니다, 기
대이상이었습니다.
Fluxus Performance는 1960년대 뉴욕을 중심으로 유럽 각지에서 펼쳐진 퍼포먼
스인데 미술사에서는 수없이 언급된 이 퍼포먼스를 책 혹은 매체를 통해서 사료

로 볼 수있을거라고 생각했지, 현재에 직접 이렇게 엿볼 수 있었다니... 그 시대
의 시대정신과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지만 퍼포먼스 내내 플럭서스 퍼포먼스의 분
위기를 유추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어제 개강파티에서 제가 찍어온 비디오 테잎
과 사진을 보여주면서 몇몇의 동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저도 너문 피곤한 한주일 끝이라 정신이 없어 정리도 잘안되었고 15년전에 공부한것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았는데, 지금 기억을 리커버하는 의미로 적어보겠습니다.

Fluxus는미술사를 조금만 공부한 사람이면 이미 잘 알고 있으실 겁니다. 한글 읽
기 불편한 분들을 위해 미리 링크를 걸면 http://en.wikipedia.org/wiki/Fluxus
Fluxus는 '유동'이라는 뜻으로 '밀려오는'이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mixed media적인 해프닝의 하나로 현대에는 시대적인 요건에 맞게 multi media로
도 표현됩니다. 어제 제가 보았던 퍼포먼스를 한 작가 Larry Miller의 홈페이지에

multi-media and performance-based works로 그의 작업 방식을 언급했습니다. 이
훈송 선배님이 주신 Larry Miller의 웹사이트 http://www.onlyonelarrymiller.com 입니다.

Fluxus는 극단적인 반예술적 전위운동응 가리키며 1960년대 초에 같은 이름으로 그룹이 조직되어 화가, 음악가, 시인, 무용가, 영화작가 등 전 예술분야에 걸쳐 나타난 액션입니다. Fluxus의 창시자 중 한사람인 George Maciunas는 " 기존의 예

술, 문화, 및 그것이 만들어 낸 모든 기구에 대해 불신하는 반예술적, 반문화적인

전위운동'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어제 제가 이름을 까먹었던 독일의 중요한 아티
스트 Joseph Beuys(1921~1986)는 mixed media에 의한 무대 퍼포먼스를 통해서, 연

기와 문학의 창조성을 부정하고, 연기에 탐닉하는 해프닝에 대해서도 반대 운동을

전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Joseph Beuys는 자유의지에 의한 픽션이 없는 이벤트
를 반대했는데 그의 퍼포먼스에 자주 드러나는 피와 담요는 그가 실제 겪은 사고
에 연유한 것들입니다. -Joseph Beuys는 다음에 공부해서 더 알려줄게요. 독일의 역사와 철학이 베이스가 되야하니까, 쉽지가 않아서 공부하다가 말았거든요...-
Fluxus라는 개념은 바로 이와 같은 예술 행위를 가리키는 명칭이며, 그 행위는 어

떤 내용을 표현코자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경과에 따라 저절로 구성되는 것으
로 표현은 제한되어야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예술적 의도는 상대적으로 인

위적인 성격, 즉 부자연스러움을 내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술=인생'이 아니고 '반예술=인생'이란 등식이 설정된다고 Fluxus 멤버들은 말합니다. 특히 음

악의 분야에서 "경직된 과거의 형식과 사회적 인습을 건강한 카오스로 해체하는 경향"(Joseph Beuys)이 백남준(Nam June Paik)에 의해 시도되었습니다. 즉 개방적

인 의식적 연쇄음 로서 이를 구체화했다고 합니다. Spring Break내
내 아파서 찡 박혀 있으면서 The Hidden order of art by Anton Ehrenzwig은 읽
었는데, 정말 예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볼 수록 나를 절망하게 만
들었다가, 다시 약간의 단서를 준 책입니다. 이 책에서 rounded sound에서 우리
의 익숙함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뛰어난 지휘자라 할지라도 베토벤의 "제9교
향곡"에는 균형이 잡힌 조화음이 드물기 때문에 그 곡을 재편곡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지휘자는 재편곡으로 넓은 음역에 대한 욕구를 채우게 되고 어떤 때는 베토벤의 의도를 외면하듯이 연주를 지휘하는 일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베토벤은 rounded melodic phrase, 즉 원만한 선율 악구보다는 확산적이고 초점이

없는 다성이 오래 이어지는 것을 좋아했다고 합니다(이부분은 쉽지않음-다성이 뭔
지 알아야 확실한 느낌이 올텐데...참 막연하게 유추했죠.)음악에서 수직적 울
림을 제거한 경우를 상상한다면 베토벤이 어떻게 소리에 귀를 기울였는지 알 수 있을텐데..(수직적 울림은 또 뭐지...음악을 좀 아는 분은 넌지시 저에게 와서 좀 알려주세요. 플리즈~)

그런데 나의 막연한 이해에도 불구하고 찾은 단서의 하나는
귀가 먹었을때 작곡한 베토벤의 '제9교향곡'에서 베토벤은 새로운 교향곡의 소리
, 예를들어 합창할 때 처음 소절에서 2중 저음을 사용하는 선례가 없는 소리를 발

표했다고 합니다. 참담하기까지한 recitativo의 선율을 연주하고, 그 전의 악장으

로부터의 시험적인 인용에 응답하다면 그것은 인간의 소리에 가까운 것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 더해진 인간의 소리는 orgiastic spirit('주신제의적'으로 번역 가
능) 환희의노래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데....무엇보다도 이 교향곡의 색조
에서 인간의 소리로의 전환을 귀머거리인 베토벤이 소리를 들으면서 작곡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소리만에 의존해서 이룩했다는것에 대해 정말 경의를 표할 뿐입니
다. 보이지 않으면서 그림을 그린다 말이되나요!. 들리지 않으면서 리듬을 표현
한다는 무용가, 들리지 않으면서 음질을 시각화하는것.....어쨋든 예술에서 음악
가라고는 John Cage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쇤베르크, 스톡하우젠의 계보를 이은 그

의 아방가르드 해프닝이 베토벤에서도 음악적 감각에 깊이 간직되어 있었다는게 방학중 유일에게 건진 의미있는 단서였습니다.

Fluxus의 알려진 작가들로는 Nam June Paik, George Brecht, Yoko Ono, Dick Higgins, Alison Knowles, Ben Patterson, Emmett Wiliams, John Cage, La Monte Young이 있는데 이중 요 근래 알게된 La Monte Young은 Time Squre의 삼각지의 베

이스먼트에 있는 Max Neuhaus를 만든 아티스트로 Audio Art class 숙제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Fluxus 멤버였다니 참 '아는 만큼 보인다'는 어느 선생님의 말씀

이 맞는가봅니다. 어릴때 미술사 한창 공부하면서 백남준과 그와 관계된 요셉 보
이스나 존 케이지는 알았지만 미니멀리즘 음악가 라 몬테 영은 전혀 모르는 사람

이었으니까요.
그의 작업 링크 입니다. Dream House http://www.melafoundation.org/dream02.htm 여기는 목요일 오후부터 연다고 합
니다. 학교 근처에 있는듯하고 끝나는 날이 얼마안남아 며칠 후에 가보려고 합니
다.
Max Neuhaus는 http://www.max-neuhaus.info/audio-video 인데 이 비디오를 안보
면 타임스퀘어를 가도 찾기 힘들듯 합니다. (혜기가 숙제 땜에 갔는데 역시 찾기 힘들었음.) 비디오 안보면 찾기 힘들겁니다. 타임스퀘어에 코카콜라 전광판은 잘
보여도 보이지도 않는 곳에 있는 작품인데다 소음이 가득한 그곳을 제대로 소리가

잘 들릴까요!

어쨋든 쓰다보니 띵동띵동 앤, 유정의 메일이 먼저 도착했네요. 시간나면 한번 더

있는 퍼포먼스에 미리 예약해서 가보세요. 물론 프리입니다. 백남준이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어제 온 몇백명의 사람중에 동양인은 거의 없었으며 일본인이 약간 보

이고 정말 코리언 같이 생겼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10명도 안되더군요.
ITP에 Interacticve art, media art한다고 guest로 온 스피커들 중에 자기 한테 영향을 주었거나, 계보나 역사를 이야기 할때 남준팩을 언급하지 않는 사람을 거
의 보지 못했으며 미디어아트의 계보는 전통적인 예술을 깬 플럭서스나 다다에 대

한 언급없이 거의 불가능하며 미디어아트를 시작할때 창시자인 남준팩을 비켜가기

는 어려운데 그의 예술 정신을 나름 유추해갈 수 있어 나름 의미있었습니다.
James Cohan 갤러리에서, 나의 치기어린 젊은 시절에 백남준 예술의 진수를 잘보
여주기 어려우면서 한국에 초기 백남준이 대거 소개되었던 그렇게도 실망했던 백
남준의 그 비디오 스컬프처를 또 볼 수있어서 좋았던 것이 아니라, 반예술을 기
치했던 Fluxus의 퍼포먼스가 또다시 하나의 형식의 아류를 만들어 지극히 Fluxus 적인 Larry Miller의 퍼포먼스가 신선했다기보다는 아주 늙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
물론 Red Burns보다는 아니지만) 그의 잘 짜여진 4막의 퍼포먼스가 전혀 지루함이

없었고 참여한 퍼포머들이 모두 진지했으며 현대감각에 맞게 잘 구성한 퍼포먼스
가 역시 예술의 메카인 뉴욕에서 활동하는 작가 답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고루
하지도 구닥다리라는 느낌이 안드는 것은 나 역시 더이상 뉴 제너레이션이 아니기

때문일까라는 생각이 잠깐 드는군요. 아이티피의 아이들이 같은 MaxMSP를 가지고
Luke Dubois가 하면 쿨하고 Daniel Palkowski가 하면 보링하다고 하더군요. 오히
려 Daniel Palkowski는 Luke Dubois가 가지고 있지 않은 깊이와 음악가 특유의 느

낌을 가지고 있어 그의 클래스 내내 수많은 느낌을 받는데, 그건 내가 구닥다리이

기 때문일지도 모르겠군요^^.

Larry Miller의 퍼포먼스 중 4막 One for Violin Solo by Nam June Paik ca. 1961(180도 Phase Shift for Nam June)은 1961년 백남준이 처음 했었던 퍼포먼스
를 재현한것인데 1960년대 동양의 작은 청년이 서양의 대표적인 악기의 하나인 바

이올린을 여기 서양에서 그렇게 깨부수었다면 그것자체가 아방가르드가 아니였을
까라는 생각에 전율했습니다.

어제 녹화중에 관객들의 놀람과 함께 순간적으로 나도 고함을 쳤지만, 레리 밀
러가 바이올린을 깨부술거라는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놀랐던 그 퍼포먼스를 아주 오래전에 예측도 없이 그 현장에서 있었다면 '충격'으로 아주 오랬동안 멍했을거라는 생각이 들어 전율했습니다.

남준은 갔지만 거장의 거대한 예술의 흔적과 Kunst Zeist는 예술에 대해 늘 경의
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후대의 한 사람에게 내내 생각을 끊이지 않게 합니다.

뉴욕에서 김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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