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pril 25, 2007
Saturday, April 21, 2007
Thursday, April 19, 2007
Artist-Cerith Wyn Evans
I sent e-mail for my classmates of Expanding Interactive Video.
Hi. Everyone.
I wanna introduce Cerith Wyn Evans.
He is a British artist. He firsly made several experimental film and music video like Scott. Since 1990, he is an installation artist. Specially he has made chandelier pieces.
This is one of his exhibition at Kunsthouse Graz
We show very nice a neon architecture of Kunsthouse Graz building(BIX) today our class.
I just confused BIX who made it. You guys know that this one made a company's architects.
But they got inspiration from Cerith Wyn Evans's work.
Enjoy seeing work!
K.
contents 2007.4. Wolrd topic | 덧없는 존재의 아름다움
박진아●미술사
영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굳건히 자리잡은 세리스 윈 에반스는 “접근가능함이라는 관념이 싫다”고 선언한다. 그래서 여전히 그의 작품세계는 일반 관객은 물론 미술 평론가들조차 손쉬운 범주화나 정의 내리기가 어려울 정도로 한치 실마리의 틈도 내주지 않는 듯하다.
이를 확인시켜주기라도 하듯, 작년 9월 암스테르담 스테델릭 미술관에서 개최된 〈빈센트 반 고흐 유럽 현대미술 대상〉 행사의 심사위원들은 수상자 후보로 지명된 윈 에반스에 대해 “우아함 뒤에 가려진 단숨에 알아차리기 어려운 급진적인 내용”이 담긴 작품을 하는 작가라며 두루뭉실한 말로 정리했다. 그런가 하면, 보스턴 화인 아츠 미술관의 큐레이터 윌리엄 스토버(William Stover)는 2004년에 열린 세리스 윈 에반스의 개인전에 기하여 쓴 글에서, “윈 에반스 작품의 원천은 영화부터 문학과 철학 분야에 두루 걸쳐 추출된 것으로서, 작가가 스스로 이름한 이른바 ‘가능한 의미들의 촉매제 혹은 저수지’를 창조하여 관객에게 다양한 여정을 선사할 것”이라고 묘사했다. 종잡기 어려운 이 같은 운(云)은 결국 윈 에반스의 작품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어려움을 넌지시 시인한 것인 동시에 관객이 알아서 경험하고 알아서 해석해달라는 도전 겸 부탁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현대미술 평론계에서 즐겨 사용되는 신비와 모호의 화법도 세리스 윈 에반스의 작품에 접근하기 어렵게 하는 데 한 팔 거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국의 막스주의 계열 미술평론가인 줄리언 스탈라브라스(Julian Stalla- brass)는 그의 저서 《아트 인코퍼레이티드》(2004년)에서,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로 난해한 세리스 윈 에반스의 작품세계와 그의 작품을 불가해한 신비의 뭉치인 것처럼 포장하는 현대미술 평론의 관행을 지적하면서 “이는 저급한 대중문화와의 경계를 분명하게 하고 싶어하는 순수 미술계의 차별화 전략일 뿐”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심지어 자유주의 편향의 《인디펜던트》를 비롯한 현대미술에 냉소적인 영국의 일부 신문들은 전시회 리뷰 기사에서 지나치게 내면관조적(inward-looking)이고 고상한 척하는 윈 에반스의 스타일은 조용한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할망정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 없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텍스트에서 이미지로
그러나 세리스 윈 에반스가 연출하는 특유의 모호함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신비하고 숭고한 분위기는 그의 핵심적인 창조 전략이며 무기다. 그가 자아내는 근접불능의 난해함을 잠시 옆으로 밀어둔 채 감히 그의 작품세계를 정리해 보면, 결국 정치, 사회, 젠더(특히 동성애주의), 휴머니즘, 영혼과 감성, 언어와 시지각 같은 주제들을 포괄하는 정체성의 정치학(identity politics)이라는 현대미술적 쟁점에 대한 개인적인 논평과 다름없다. 1984년 로열 칼리지 오브 아트를 갓 졸업한 26세의 젊은 윈 에반스가 런던 피카딜리 극장 주변의 캬바레와 나이트클럽을 드나들며 단편 영화 발표와 시 낭송회에 몰두했던 1980년대의 런던(같은 시기 뉴욕 언더그라운드 클럽 문화와 유사하다)은 포스트모더니즘이 주류 문화로 잔뜩 흡수되고 있었다. 퍼포먼스 작가 겸 패션디자이너 리 바워리(Leigh Bowery), 영화감독 데릭 저먼(Derek Jarman)과 존 메이버리(John Maybury), 팝 가수 보이 조지(Boy George)와 스티브 스트레인지(Steve Strange) 등과 어울리며 친분을 쌓고 실험주의, 페미니즘, 동성애 이론, 다문화주의 같은 비판문화이론에 심취할 수 있었던 것이 극보수주의를 표방하는 대처 정권 속에서 그나마 그의 숨통을 터 주었다.
그의 작품 속에 줄기차게 흐르는 골자는 엘리트주의적 지성주의(intellectualism)의 가차없는 엄격성과 매정함에서 비롯된 작가 내면의 자책감과 반성의식에 대한 표현이라고 일부 평론가들은 지적한다. 예컨대, 그가 작품에 즐겨 차용한 바 있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외에도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Pier Paolo Pasolini) 감독의 영화 내러티브, 브라이언 가이즌(Brion Gysin)과 윌리엄 버로스(William S. Burroughs)의 실험주의 문학, 기 드보르(Guy Debord)의 급진적 사회이론은 전문지식이나 고등교육 없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른바 ‘고급 문화’의 산물이다. 반면에 그가 설치물에 자주 활용하는 컴퓨터는 대중 매체의 은유물로서, 24시간 언제 어디서나 감상 상대가 지성인이든 대중이든 차별하지 않고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민주적’인 기계를 대변한다.
예컨대, 그의 대표작인 〈자연순리에 대한 역행(Against Nature)〉(2003)은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결합체로 꼽힌다. 이 작품은 19세기 프랑스 귀족이자 극단적인 탐미주의자였던 J.K. 위즈망(J.K. Huysmans)이 쓴 동명의 책(1884년 출간)에서 발췌한 텍스트 일부를 컴퓨터에 연결시켜 모스 부호로 바꾼 후 이탈리아의 유명 디자이너인 리비오 카스틸리오니와 잔프란코 프라티니가 디자인한 투명 플라스틱 튜브 모양의 조명 명품 보알룸 램프(Boalum Lamp, 아르테미데 사 생산, 1969)를 달아 깜빡거리도록 제작한 것이다. 이 작품에 대한 평론가 얀 페르뵈르트(Jan Verwoert)의 분석은 다분히 민주적이다. 그에 따르면 위즈망의 탐미주의 텍스트와 보알룸 명품 램프로 대변되는 고급문화와 컴퓨터로 대변되는 민주적인 기계를 한 작품 안에 나란히 연결하여 추상적인 관념을 컴퓨터라는 민주적 매체로 전환시킨 윈 에반스는 이렇게 ‘번역된’ 메시지(주로 모스 신호 음향효과나 음악)를 관객과 소통하려 시도했다는 것이다.
모스 부호는 근 한 세기 전에 사용된 한물간 통신언어라는 점에서 과거, 기억, 구물(舊物)에 대한 노스탤지아의 은유이며 컴퓨터는 대중 매체의 상징에 불과하다. 조명에 모스 부호라는 특수 문자/소리 언어와 컴퓨터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언뜻 윈 에반스는 테크노 지향적인 미술가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지도 모르지만 실은 테크놀러지는 그의 관심사가 아니다. 또 그는 작품 제작을 디자이너들이나 전문 기술자들에게 외주하는 대리 제작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유명 디자이너들을 시켜 디자인한 후 무라노 유리 공방에서 제작해 온 샹들리에를 작품화한 〈주파주 교정과 센시토메트리(Calibration and Sensitometry)〉(1987/2006)와 〈일기: 세상을 개선하는 방법(Diary: How to Improve the World(You will only make is worse)〉(2003)은 존 케이지의 글 〈M. Writings ’76〜’72〉에서 발췌한 텍스트를 컴퓨터를 사용해 모스 코드로 전환한 후 빛이 모스 신호를 치듯 깜빡거리도록 만든 조명설치 연작들이다.
윈 에반스의 궁극적인 관심사이자 영원한 영감의 원천은 텍스트다. 언어와 시간과 지각의 현상학이라는 주제를 일관적으로 다루게 되기까지 그는 어린시절부터 알랭 로브-그리예의 누보로망 텍스트와 문예이론을 흠모하며 통독했다고 한다. 누보로망 소설은 서부 웨일스의 석탄과 철강산업 도시 라넬리에서 자란 감수성 예민한 유년의 윈 에반스에게 환상의 날개를 달아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시간, 장소, 인물 성격의 묘사를 위주로 한 전통적인 소설과는 반대로 화자의 개인적인 시점을 위주로 한 한결 모호한 분위기의 누벨 로망식 서술법은 ‘열린 결말’과 ‘자유로운 상상’을 허용했다.
그렇다면 세리스 윈 에반스에게 이미지는 무엇을 뜻할까? 그에게 이미지로 완성되는 시각 미술 작업이란 이야기의 종결을 뜻하며 따라서 곧 임박할 사멸에 대한 은유이다. 윈 에반스가 알랭 로브-그리예와 한스-울리히 오브리스트(현 런던 서펜타인갤러리 공동 관장)와 나눈 3자 대담에서 밝힌 바 있듯이, 이미지 또는 그림(영상 혹은 비영상)은 ‘결말의 종결’을 뜻하며 이는 곧 그것이 해피엔딩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독자의 ‘실망’을 뜻한다. 롤랑 바르트가 〈작품에서 텍스트로(From Work to Text)〉라는 글에서도 썼듯이 결말의 종결이라 함은 이야기가 종착지에 다다르고 여러 무한한 상상의 결론이 모조리 닫힘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런 윈 에반스가 기호학에서 빌려온 텍스트 상호간의 관련성(intertextuality) 개념을 일관된 화두로 다루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의 하늘은 종이처럼 얇다(The Sky is thin as Paper here)〉(2004)는 윌리엄 버로스의 소설 〈The Place of Dead Roads〉에 등장하는 구절을 따와 제목을 붙이고 일본 신사(神社) 예식에서 따온 이미지들을 슬라이드 프로젝션으로 만들었다. 겹겹이 겹쳐져 보이는 일본 남성들의 사진 이미지들을 통해서 작가는 인터넷의 하이퍼텍스트(hypertext)를 연상시키는 내러티브를 재연하려 했다고 한다. 그러가 하면 〈드리머신(Dreamachine)〉 시리즈는 시인 겸 화가이자 버로스의 반려자였던 브라이언 가이즌에 대한 경의를 표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가이즌이 1960년대에 만들었던 드리머신을 재구성한 이 작품은 서서히 도는 긴 원통에 새겨진 패턴 사이사이로 은은한 전구 빛이 스며나오도록 제작되었다. 한참 바라보고 있자면 관객은 어느덧 최면 상태에 빠지는 듯한 묘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는 1960년대 풍의 사이키델릭한 분위기와 가이즌의 위대한 문학정신이 남기고 간 마력의 기억을 되짚어보기 위함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만물의 덧없음을 빛으로 읊조리는 음유시인
덧없음(ephemerality)과 이율배반(paradox)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그의 대표작 〈Inverse, Reverse, Perverse〉(1996)에 잘 나타나 있다. 자크 라캉의 ‘거울 자아 단계’ 이론을 재연한 듯한 이 작품에서 관객은 표면이 오목하게 들어간 요면 거울 속에 반영된 위아래가 뒤집히고 형상이 일그러진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심기가 불편해지는 것을 느낀다. 작가는 우리의 고정관념과 시각적 인지(perception)가 얼마나 망가지기 쉽고 상대적인 것인지를 생각해보라고 재촉하는 듯하다. 같은 맥락에서 〈뫼비우스 띠〉(1997)도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연속과 반복의 수학적인 형태를 빌려서 인간의 감성은 기억 혹은 추억에 의해서 끝없이 반복되고 연결되어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아름답고 화려하지만 한 번 터지면 영원히 사라지고 마는 불꽃은 윈 에반스가 즐겨 사용하는 또다른 덧없음의 은유다. 〈In Girum Imus Nocte Et Consumimur Igni〉(1997)는 기 드보르의 최후작인 영화 제목을 그대로 따온 제목으로서 “우리는 밤새 돌고 돌다가 불 속으로 탕진해버린다”는 뜻을 담고 있다. 돌고 도는 생과 사의 순환원리를 명상적으로 표현하는 작가는 앞에서부터 읽든 뒤에서부터 읽든 동일한 라틴어 팔린드롬(palindrome)의 언어적 유희성을 십분 활용하기 위하여 플라스틱 원통형 위에 네온관으로 문구를 부착시켰다.
영화 선배인 데릭 저먼의 영향 덕택에 세리스 윈 에반스의 설치작은 빛을 흥건하게 사용한 것들이 대종을 이룬다. 네온 조명은 초고속으로 대기를 여행하는 빛의 특성을 반영해주는 안성맞춤의 재료일 뿐만 아니라 현대인에게 익숙한 24시간 잠들지 않는 도시 공간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네온 조명으로 빛나는 텍스트 구절은 언어와 의사소통에 대한 언급을 하는 듯 보이지만 작가는 그 이상의 어떤 의미나 해석의 여지를 노출시키기를 꺼린다. 그래서 그의 작품 앞에 선 관객은 깜빡대는 네온 빛과 모호함의 바다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언뜻 아름다워 보이는 그의 작품에는 어김없이 세상만사의 일시성과 덧없음에 대한 멜랑콜리가 감돈다. 최근 오스트리아 쿤스트하우스 그라츠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를 〈거품 방울을 파는 행상인(Bubble Peddler)〉이라고 이름한 연유도 전세계를 여행하며 미술 작품을 선보이고 내다 파는 작가 자신을 한낱 비누거품을 방울방울 불어서 생계를 잇는 행상인에 비유한 시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거품방울은 갖가지 형상으로 오색찬연하게 공중을 날지만 순식간에 터져 사라지고 만다. 일본의 가부키에서 기요모토(淸元) 음악에 맞춰 추는 격렬한 춤에서 빌린 거품방울을 파는 행상인 모티프는 한낱 덧없는 존재의 무상함을 뜻한다.
대중 매체가 현대인의 가장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구석까지 침투해 들어가는 요즘,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사이의 경계는 점점 자취를 잃고 있다. 그에 대한 논평으로 윈 에반스는 이번 그라츠의 전시를 위해 특수 주문 제작된 작품 〈채색된 중국 전등(Coloured Chinese Lanterns...)〉(2007)에서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것, 의식적인 것과 무의식적인 것이 무작위로 뒤섞인 현실을 조용히 꼬집는다.
제아무리 희한하고 별의별 모양의 거품을 불어낸다 한들, 거품방울의 생명은 몇 초를 넘기지 못하고 터져 영원히 사라지고 마는 듯이 글로벌시대의 미술계를 주름잡으며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작가 자신이 그것과 뭐가 다르다 하겠는가? 세리스 윈 에반스는 깨지기 쉬운 생명과 마찬가지로 세속의 모든 성공과 명망조차 무상(無常)한 것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 wolganmisool
Hi. Everyone.
I wanna introduce Cerith Wyn Evans.
He is a British artist. He firsly made several experimental film and music video like Scott. Since 1990, he is an installation artist. Specially he has made chandelier pieces.
This is one of his exhibition at Kunsthouse Graz
We show very nice a neon architecture of Kunsthouse Graz building(BIX) today our class.
I just confused BIX who made it. You guys know that this one made a company's architects.
But they got inspiration from Cerith Wyn Evans's work.
Enjoy seeing work!
K.
contents 2007.4. Wolrd topic | 덧없는 존재의 아름다움
박진아●미술사
영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굳건히 자리잡은 세리스 윈 에반스는 “접근가능함이라는 관념이 싫다”고 선언한다. 그래서 여전히 그의 작품세계는 일반 관객은 물론 미술 평론가들조차 손쉬운 범주화나 정의 내리기가 어려울 정도로 한치 실마리의 틈도 내주지 않는 듯하다.
이를 확인시켜주기라도 하듯, 작년 9월 암스테르담 스테델릭 미술관에서 개최된 〈빈센트 반 고흐 유럽 현대미술 대상〉 행사의 심사위원들은 수상자 후보로 지명된 윈 에반스에 대해 “우아함 뒤에 가려진 단숨에 알아차리기 어려운 급진적인 내용”이 담긴 작품을 하는 작가라며 두루뭉실한 말로 정리했다. 그런가 하면, 보스턴 화인 아츠 미술관의 큐레이터 윌리엄 스토버(William Stover)는 2004년에 열린 세리스 윈 에반스의 개인전에 기하여 쓴 글에서, “윈 에반스 작품의 원천은 영화부터 문학과 철학 분야에 두루 걸쳐 추출된 것으로서, 작가가 스스로 이름한 이른바 ‘가능한 의미들의 촉매제 혹은 저수지’를 창조하여 관객에게 다양한 여정을 선사할 것”이라고 묘사했다. 종잡기 어려운 이 같은 운(云)은 결국 윈 에반스의 작품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어려움을 넌지시 시인한 것인 동시에 관객이 알아서 경험하고 알아서 해석해달라는 도전 겸 부탁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현대미술 평론계에서 즐겨 사용되는 신비와 모호의 화법도 세리스 윈 에반스의 작품에 접근하기 어렵게 하는 데 한 팔 거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국의 막스주의 계열 미술평론가인 줄리언 스탈라브라스(Julian Stalla- brass)는 그의 저서 《아트 인코퍼레이티드》(2004년)에서,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로 난해한 세리스 윈 에반스의 작품세계와 그의 작품을 불가해한 신비의 뭉치인 것처럼 포장하는 현대미술 평론의 관행을 지적하면서 “이는 저급한 대중문화와의 경계를 분명하게 하고 싶어하는 순수 미술계의 차별화 전략일 뿐”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심지어 자유주의 편향의 《인디펜던트》를 비롯한 현대미술에 냉소적인 영국의 일부 신문들은 전시회 리뷰 기사에서 지나치게 내면관조적(inward-looking)이고 고상한 척하는 윈 에반스의 스타일은 조용한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할망정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 없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텍스트에서 이미지로
그러나 세리스 윈 에반스가 연출하는 특유의 모호함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신비하고 숭고한 분위기는 그의 핵심적인 창조 전략이며 무기다. 그가 자아내는 근접불능의 난해함을 잠시 옆으로 밀어둔 채 감히 그의 작품세계를 정리해 보면, 결국 정치, 사회, 젠더(특히 동성애주의), 휴머니즘, 영혼과 감성, 언어와 시지각 같은 주제들을 포괄하는 정체성의 정치학(identity politics)이라는 현대미술적 쟁점에 대한 개인적인 논평과 다름없다. 1984년 로열 칼리지 오브 아트를 갓 졸업한 26세의 젊은 윈 에반스가 런던 피카딜리 극장 주변의 캬바레와 나이트클럽을 드나들며 단편 영화 발표와 시 낭송회에 몰두했던 1980년대의 런던(같은 시기 뉴욕 언더그라운드 클럽 문화와 유사하다)은 포스트모더니즘이 주류 문화로 잔뜩 흡수되고 있었다. 퍼포먼스 작가 겸 패션디자이너 리 바워리(Leigh Bowery), 영화감독 데릭 저먼(Derek Jarman)과 존 메이버리(John Maybury), 팝 가수 보이 조지(Boy George)와 스티브 스트레인지(Steve Strange) 등과 어울리며 친분을 쌓고 실험주의, 페미니즘, 동성애 이론, 다문화주의 같은 비판문화이론에 심취할 수 있었던 것이 극보수주의를 표방하는 대처 정권 속에서 그나마 그의 숨통을 터 주었다.
그의 작품 속에 줄기차게 흐르는 골자는 엘리트주의적 지성주의(intellectualism)의 가차없는 엄격성과 매정함에서 비롯된 작가 내면의 자책감과 반성의식에 대한 표현이라고 일부 평론가들은 지적한다. 예컨대, 그가 작품에 즐겨 차용한 바 있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외에도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Pier Paolo Pasolini) 감독의 영화 내러티브, 브라이언 가이즌(Brion Gysin)과 윌리엄 버로스(William S. Burroughs)의 실험주의 문학, 기 드보르(Guy Debord)의 급진적 사회이론은 전문지식이나 고등교육 없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른바 ‘고급 문화’의 산물이다. 반면에 그가 설치물에 자주 활용하는 컴퓨터는 대중 매체의 은유물로서, 24시간 언제 어디서나 감상 상대가 지성인이든 대중이든 차별하지 않고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민주적’인 기계를 대변한다.
예컨대, 그의 대표작인 〈자연순리에 대한 역행(Against Nature)〉(2003)은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결합체로 꼽힌다. 이 작품은 19세기 프랑스 귀족이자 극단적인 탐미주의자였던 J.K. 위즈망(J.K. Huysmans)이 쓴 동명의 책(1884년 출간)에서 발췌한 텍스트 일부를 컴퓨터에 연결시켜 모스 부호로 바꾼 후 이탈리아의 유명 디자이너인 리비오 카스틸리오니와 잔프란코 프라티니가 디자인한 투명 플라스틱 튜브 모양의 조명 명품 보알룸 램프(Boalum Lamp, 아르테미데 사 생산, 1969)를 달아 깜빡거리도록 제작한 것이다. 이 작품에 대한 평론가 얀 페르뵈르트(Jan Verwoert)의 분석은 다분히 민주적이다. 그에 따르면 위즈망의 탐미주의 텍스트와 보알룸 명품 램프로 대변되는 고급문화와 컴퓨터로 대변되는 민주적인 기계를 한 작품 안에 나란히 연결하여 추상적인 관념을 컴퓨터라는 민주적 매체로 전환시킨 윈 에반스는 이렇게 ‘번역된’ 메시지(주로 모스 신호 음향효과나 음악)를 관객과 소통하려 시도했다는 것이다.
모스 부호는 근 한 세기 전에 사용된 한물간 통신언어라는 점에서 과거, 기억, 구물(舊物)에 대한 노스탤지아의 은유이며 컴퓨터는 대중 매체의 상징에 불과하다. 조명에 모스 부호라는 특수 문자/소리 언어와 컴퓨터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언뜻 윈 에반스는 테크노 지향적인 미술가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지도 모르지만 실은 테크놀러지는 그의 관심사가 아니다. 또 그는 작품 제작을 디자이너들이나 전문 기술자들에게 외주하는 대리 제작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유명 디자이너들을 시켜 디자인한 후 무라노 유리 공방에서 제작해 온 샹들리에를 작품화한 〈주파주 교정과 센시토메트리(Calibration and Sensitometry)〉(1987/2006)와 〈일기: 세상을 개선하는 방법(Diary: How to Improve the World(You will only make is worse)〉(2003)은 존 케이지의 글 〈M. Writings ’76〜’72〉에서 발췌한 텍스트를 컴퓨터를 사용해 모스 코드로 전환한 후 빛이 모스 신호를 치듯 깜빡거리도록 만든 조명설치 연작들이다.
윈 에반스의 궁극적인 관심사이자 영원한 영감의 원천은 텍스트다. 언어와 시간과 지각의 현상학이라는 주제를 일관적으로 다루게 되기까지 그는 어린시절부터 알랭 로브-그리예의 누보로망 텍스트와 문예이론을 흠모하며 통독했다고 한다. 누보로망 소설은 서부 웨일스의 석탄과 철강산업 도시 라넬리에서 자란 감수성 예민한 유년의 윈 에반스에게 환상의 날개를 달아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시간, 장소, 인물 성격의 묘사를 위주로 한 전통적인 소설과는 반대로 화자의 개인적인 시점을 위주로 한 한결 모호한 분위기의 누벨 로망식 서술법은 ‘열린 결말’과 ‘자유로운 상상’을 허용했다.
그렇다면 세리스 윈 에반스에게 이미지는 무엇을 뜻할까? 그에게 이미지로 완성되는 시각 미술 작업이란 이야기의 종결을 뜻하며 따라서 곧 임박할 사멸에 대한 은유이다. 윈 에반스가 알랭 로브-그리예와 한스-울리히 오브리스트(현 런던 서펜타인갤러리 공동 관장)와 나눈 3자 대담에서 밝힌 바 있듯이, 이미지 또는 그림(영상 혹은 비영상)은 ‘결말의 종결’을 뜻하며 이는 곧 그것이 해피엔딩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독자의 ‘실망’을 뜻한다. 롤랑 바르트가 〈작품에서 텍스트로(From Work to Text)〉라는 글에서도 썼듯이 결말의 종결이라 함은 이야기가 종착지에 다다르고 여러 무한한 상상의 결론이 모조리 닫힘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런 윈 에반스가 기호학에서 빌려온 텍스트 상호간의 관련성(intertextuality) 개념을 일관된 화두로 다루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의 하늘은 종이처럼 얇다(The Sky is thin as Paper here)〉(2004)는 윌리엄 버로스의 소설 〈The Place of Dead Roads〉에 등장하는 구절을 따와 제목을 붙이고 일본 신사(神社) 예식에서 따온 이미지들을 슬라이드 프로젝션으로 만들었다. 겹겹이 겹쳐져 보이는 일본 남성들의 사진 이미지들을 통해서 작가는 인터넷의 하이퍼텍스트(hypertext)를 연상시키는 내러티브를 재연하려 했다고 한다. 그러가 하면 〈드리머신(Dreamachine)〉 시리즈는 시인 겸 화가이자 버로스의 반려자였던 브라이언 가이즌에 대한 경의를 표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가이즌이 1960년대에 만들었던 드리머신을 재구성한 이 작품은 서서히 도는 긴 원통에 새겨진 패턴 사이사이로 은은한 전구 빛이 스며나오도록 제작되었다. 한참 바라보고 있자면 관객은 어느덧 최면 상태에 빠지는 듯한 묘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는 1960년대 풍의 사이키델릭한 분위기와 가이즌의 위대한 문학정신이 남기고 간 마력의 기억을 되짚어보기 위함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만물의 덧없음을 빛으로 읊조리는 음유시인
덧없음(ephemerality)과 이율배반(paradox)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그의 대표작 〈Inverse, Reverse, Perverse〉(1996)에 잘 나타나 있다. 자크 라캉의 ‘거울 자아 단계’ 이론을 재연한 듯한 이 작품에서 관객은 표면이 오목하게 들어간 요면 거울 속에 반영된 위아래가 뒤집히고 형상이 일그러진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심기가 불편해지는 것을 느낀다. 작가는 우리의 고정관념과 시각적 인지(perception)가 얼마나 망가지기 쉽고 상대적인 것인지를 생각해보라고 재촉하는 듯하다. 같은 맥락에서 〈뫼비우스 띠〉(1997)도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연속과 반복의 수학적인 형태를 빌려서 인간의 감성은 기억 혹은 추억에 의해서 끝없이 반복되고 연결되어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아름답고 화려하지만 한 번 터지면 영원히 사라지고 마는 불꽃은 윈 에반스가 즐겨 사용하는 또다른 덧없음의 은유다. 〈In Girum Imus Nocte Et Consumimur Igni〉(1997)는 기 드보르의 최후작인 영화 제목을 그대로 따온 제목으로서 “우리는 밤새 돌고 돌다가 불 속으로 탕진해버린다”는 뜻을 담고 있다. 돌고 도는 생과 사의 순환원리를 명상적으로 표현하는 작가는 앞에서부터 읽든 뒤에서부터 읽든 동일한 라틴어 팔린드롬(palindrome)의 언어적 유희성을 십분 활용하기 위하여 플라스틱 원통형 위에 네온관으로 문구를 부착시켰다.
영화 선배인 데릭 저먼의 영향 덕택에 세리스 윈 에반스의 설치작은 빛을 흥건하게 사용한 것들이 대종을 이룬다. 네온 조명은 초고속으로 대기를 여행하는 빛의 특성을 반영해주는 안성맞춤의 재료일 뿐만 아니라 현대인에게 익숙한 24시간 잠들지 않는 도시 공간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네온 조명으로 빛나는 텍스트 구절은 언어와 의사소통에 대한 언급을 하는 듯 보이지만 작가는 그 이상의 어떤 의미나 해석의 여지를 노출시키기를 꺼린다. 그래서 그의 작품 앞에 선 관객은 깜빡대는 네온 빛과 모호함의 바다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언뜻 아름다워 보이는 그의 작품에는 어김없이 세상만사의 일시성과 덧없음에 대한 멜랑콜리가 감돈다. 최근 오스트리아 쿤스트하우스 그라츠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를 〈거품 방울을 파는 행상인(Bubble Peddler)〉이라고 이름한 연유도 전세계를 여행하며 미술 작품을 선보이고 내다 파는 작가 자신을 한낱 비누거품을 방울방울 불어서 생계를 잇는 행상인에 비유한 시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거품방울은 갖가지 형상으로 오색찬연하게 공중을 날지만 순식간에 터져 사라지고 만다. 일본의 가부키에서 기요모토(淸元) 음악에 맞춰 추는 격렬한 춤에서 빌린 거품방울을 파는 행상인 모티프는 한낱 덧없는 존재의 무상함을 뜻한다.
대중 매체가 현대인의 가장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구석까지 침투해 들어가는 요즘,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사이의 경계는 점점 자취를 잃고 있다. 그에 대한 논평으로 윈 에반스는 이번 그라츠의 전시를 위해 특수 주문 제작된 작품 〈채색된 중국 전등(Coloured Chinese Lanterns...)〉(2007)에서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것, 의식적인 것과 무의식적인 것이 무작위로 뒤섞인 현실을 조용히 꼬집는다.
제아무리 희한하고 별의별 모양의 거품을 불어낸다 한들, 거품방울의 생명은 몇 초를 넘기지 못하고 터져 영원히 사라지고 마는 듯이 글로벌시대의 미술계를 주름잡으며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작가 자신이 그것과 뭐가 다르다 하겠는가? 세리스 윈 에반스는 깨지기 쉬운 생명과 마찬가지로 세속의 모든 성공과 명망조차 무상(無常)한 것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 wolganmisool
Wednesday, April 18, 2007
가만히 조용히 정진하자.
그때도 아랍계에게는 직접적으로 한국계와 일본계에게는 간접적인 제재가 있었다. 마음이 불편하다. 순탄하지 않은 상황들이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일어나는구나.
Wednesday, April 11, 2007
Monday, April 09, 2007
Video
This is one of my trials for AV Brush version 2.0. Specially, this video is for Expanding Interactive Video class in ITP, NYU.
Wednesday, April 04, 2007
honaya. 나도 이 인터뷰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VS 철학자 황필호 (객석 1996년 1월호에서 Clipping 한 내용입니다.)
황 : 우선 바쁘신 데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한국에서는 조금 유명한 편입니다만, 선생님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분입니다. 선생님이야말로 '무관의 제왕'이라 해도 결코 틀린 말이 아닐텐데요.
백 : 아니요, 그러지 마세요.
황 : 선생님 행복하십니까?
백 : 뭐 바쁘면 행복이지요.
황 : 그러나 너무 바쁘면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백 : 시간 가는 걸 모르고 잊어버리면 행복하지요. 할 일이 없으면 머리가 뱅뱅 돌아서 우울해지니까요. 난 적당히 바쁘고 적당히 놀고 그럽니다.
황 : 놀기도 하세요?
백 : 난 예술가니까, 논다는 것과 예술을 한다는 것은 마찬가지가 되지요.
황 : 그럼 놀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백 : 글쎄 난 워낙 그렇게 일 많이 하지 않아요.
황 : 쉴 땐 어떻게 쉬세요.
백 : 그저 가만히 침대에 누워서 행사 생각하고...
황 : 제가 알기로는 지난여름이 선생님의 세 번째 공식적인 귀국이라고 생각되는데요, 34년만에 1984년에 오셨고, 88올림픽때 오셨으면 그때가 세 번째 아닙니까?
백 : 그래도 일년에 한두 번쯤은 와요.
황 : 한국에 올 때마다 특별히 느끼신 점은?
백 : 잘 살게 되면 문화도 높아지지요.
황 : 선생님이 계속 한국에 계셨다면 예술활동을 하셨을까요?
백 : 했겠지요. 미디어 아트나 작곡 같은 것을 했겠지요. 성공했을는지는 모르지만, 또 성공할 필요도 없고요. 요컨대 진정으로 하고 싶으면 하게 됩니다.
황 : 선생님은 한국인입니까? 미국인입니까? 세계인입니까?
백 : 뭐 그런 거 생각 안해요. 좌우간 우린 매달매달 예술을 해서 일년에 한번쯤은 신문에 나야 되고, 그걸 위해서는 절대적 책략이 있어야지요. 그렇게만 생각합니다. 아인슈타인이 뭐 자신을 유태인이라고 생각했겠소? 독일인이라고 생각했겠소? 자기 진리만 있으면 되지요.
황 : 얘기를 들으니까 선생님이야말로 예술을 위해 국경을 초월한 분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백 : 그래도 국경을 지날 때는 항상 남들이 '째리니까' 할 수 없지요(웃음).
"인연이란 참 오묘한 거지요"
황 : 지난번의 퍼포먼스에는 '백남준+굿+요셉 보이스 추모제'란 긴 제목이 붙었더군요. 왜 하필 '우랄 알타이의 꿈'이라고 붙이셨습니까?
백 : 이 꿈은 차츰차츰 시작된 거예요. 인연이라고 할 수 있지요. 불교의 '인연'을 산스크리트어로 뭐라고 합니까?
황 : 네, '헤투 프라타야'(hetu-pratyaya)라고 합니다만...
백 : 어떤 사람은 '카르마'라고 하던데요.
황 : 카르마는 보통 '업(業)'이라고 번역합니다.
백 : '인연'이란 말이 참 재미있는 표현이거든요. 인은 중심이고, 연은 가장자리지요. 그러니까 우연과 필연이 결부된 관계입니다. 알다시피 선불교는 바로 인연을 체득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성불한다고 하지요. 그런데 그것을 영어로 번역 하려면 문제가 생기지요.
황 : 영어로는 보통 인과법칙이란 뜻으로 'Principle of Causation'이나 'Principle of Cause and Effect'라고 말하고, 인연에 의하여 생긴 삼라만상을 'Causally Conditioned Phenomena'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제가 특별히 좋아하며 - 또한 많은 학자들이 사용하는 - 용어로는 'Dependent Co-origination'이나 'Dependent Co-arising'이라는 번역입니다. 서로 독불장군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서로서로 의존해서 생겨났다는 뜻이지요. "이것이 있으니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니 이것이 있다"는 연기의 개념을 잘 전달해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연기를 보면 바로 깨달은 사람이 된다고 불교는 가르칩니다.
백 : 그렇죠. '일즉다(一卽多)' '다즉일(多卽一)' 이지요. 그런데 'Dependent Co-origination이라는 말은 누가 만든 영어에요?
황 : 그건 제가 확실히 모릅니다만, 어쨌든 영어권에서는 대개 그렇게 공식화하고 잇습니다.
배: 그래요? 좌우간 좋은 말을 들었습니다. 여기에 적어 놓겠습니다.
황 : 저도 좋은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이란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 의존해서 상생(相生)한다는 뜻이니까요.
백 : 그러니까 일종은 'Causal and Casual Interrelationship'이지요.
황 : 인과적 및 비인과적 상호관계네요.
백 : 그런데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Causal'과 'Casual'이 모두 '카'라는 발음으로 시작합니다만, 나는 산스크리트어를 전혀 모르지만, '카'라는 것은 '집'리란 뜻도 있고 '자비'란 뜻도 있잖아요? 산스크리트에서 '카'란 무슨 뜻입니까? 'Causal'과 'Casual'은 아주 비슷하면서도 정반대의 뜻이거든요.
황 :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는 진정한 우정이나 순수한 친애를 가리키는 '자'(慈, maittri)와 동정이나 연민을 가리키는 '비'(悲, Karuna)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니까 자비라는 표현에도 '카'라는 발음이 있습니다. 하여간 자비란 다른 사람의 고통에 스스로 참여함으로써 동고동락하는 마음으로 슬퍼하고, 더 나아가서는 그를 직접 도와주려는 우정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인연 얘기를 하십니까?
백 : 보이스에 대한 추모제가 어떻게 발전했는냐고 물어서, 인연이 차츰차츰 발전한 것이라는 뜻이지요. 마치 밥을 먹다가 식용이 나면 더 먹듯이 말입니다. 왜 '우랄 알타이의 꿈'이냐? 그것도 다 인연 아닙니까?
황 : 네, 그렇군요.
"요셉 보이스는 시골사람입니다"
황 : 선생님과 인연을 맺었던 요셉 보이스는 어떤 사람입니까?
백 : 보시스는 물교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지요. 그는 생명력이 강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그는 시골사람입니다. 시골사람이라는 게 중요해요. 난 비교적 시골사람을 좋아해요. 보이스는 네덜란드와 독일의 국경에서 태어난 시골사람이에요. 사실은 화란인 이지만 독일 국적을 가지고 있어서 1940년에 독일공군에 자원을 했어요. 왜 자원을 했는냐고 물었더니, 고등학교 클래스메이트들이 전부 전장에 나가서 죽어서 그들과 같이 죽으려고 나갔다고 하더군요. 하여간 그가 침략전쟁에 참여한 것은 약점이지요. 그건 그렇고, 이 사람이 비행사고로 전쟁에 나가서 '돈오'를 했어요. 영어로는 'Enlightenment'라고 하는데 순수한 우리말로는 뭐라고 합니까?
황 :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백 : 그리고 체념을 우리 말로 뭐라고 해요?
황 : 그냥 '체념'이라고 합니다.
백 : 불교가 굉장히 역사가 길지요. 그리고 부녀자 신도들이 많았잖아요? 그러면 대중화된 순수한 조선말이 나왔어도 괜찮았을텐데요.
황 : 원래 불교가 중국으로부터 한국에 들어왔기 때문에 처음부터 한자 용어를 많이 사용하게 되었겠지요. 그러나 선생님 말씀대로 깨달음과 같은 우리의 고유한 표현이 없다는 것은 좀 섭섭한 일이군요.
백 : 언어가 중요해요.
황 : 요즘은 '체념'을 그냥 '포기'라는 뜻으로 사용하지만, 원래는 이 뜻 이외에도 '도리를 깨닫는 마음'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니르바나'라는 표현도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뜻보다는 마음이 고요한 상태로 돌아간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보이스는 전쟁을 통해서 세상이 귀찮다는 비관적인 의미가 아니라 고요한 무념무상의 상태로 들어갔다는 뜻입니까?
백 : 그러니까 보이스의 문제는 바로 체념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는 소련 상공에서 비행하다가 총알이 왼쪽으로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나와서 불시착을 했어요. 그런데 타타르족인 몽고인들이 심장이 완전히 끊어진 그의 옷을 발가벗겨져 버터를 온몸에 흠뻑 칠했어요. 그랬더니 버터의 온기가 피부를 통해 몸 속으로 들어가서 다시 호흡을 시작했어요. 그때 이 사람이 돈오를 했어요. 뭘 깨달았어요. 한 번 죽었다 살아나면 세상을 달리 보는 게 불교적 체념이 아니에요?
황 : 아, 그래서 '우랄 알타이의 꿈'이 나왔군요. 그런데 이 보이스가 선생님에게 미친 영향은 무엇입니까?
백 : 사람들은 그가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나에게 큰 영향을 일방적으로 주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내가 그보다 한 3년 먼저 유명해졌어요. 그러니까 상부상조의 관계라고 말할 수 있지요. 하여간 그는 최초로 나를 알아준 사람이에요. 누구든지 자기를 알아주면 좋지 않아요? 내 해프닝이 좋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의 얼굴이 모든 신고를 다 앓고 체념으로 살아온 고생의 모습, 마치 무기징역 마치고 나온 사람의 모습이었어요. 죄가 잇든 말든 간에.
황 : 그렇습니까?
백 : 난 언제나 극단적인 가치(extreme values)에 흥미가 있어요.
"예술이란 본능을 따르는 행위입니다"
황 : 사실 선생님은 요셉 보이스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가들과 관계도 항상 매스컴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존 케이지와의 관계도 마찬가진데요, 선생님은 그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하지만, 그는 선생님이 주장하는 만큼 선생님에게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백 : 케이지로부터는 많은 영향을 받았지요. 그러니까 그의 말은 겸손의 말이기보다는 오히려 그가 나 때문에 가끔 당혹감을 느겼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원래 예술이란 본능을 따르는 행위입니다.
백 : 네, 그렇지요.
황 : 지금까지 선생님은 이른바 한국적인 것의 허상과 경제의 실상을 주장하셨는데요, 선생님은 혹시 종교를 가지고 계십니까?
백 : 종교는 없어요. 마르크시스트입니다.
황 : 마르크시스트라고요?
백 : 그럼요, 제일 가깝지요.
황 : 무슨 뜻입니까?
백 : 난 바보 마르크시스트는 아니에요.
황 : 마르크시스트에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제가 아는 한, 마르크스에 대해서 최소한 네 가지 시각이 있습니다. 첫째는 과학자나 경제학자로서의 마르크스, 둘째는 혁명가로서의 마르크스, 셋째는 유사 종교가로서의 마르크스, 넷째는 휴머니스트로서의 마르크스가 잇습니다. 선생님은 어떤 의미의 마르크시스트 입니까?
백 : 내가 마르크스를 배운 다음에 장사하지 않고 예술 하겠다고 하니까 다들 웃더군요. 그러니까 나는 마르크스한테 큰 은혜를 입었지요.
황 : 무슨 뜻입니까?
백 : 난 약은 놈이니까 홍콩으로 도망쳤어요. 화려한 망명이었지요. 그리곤 미국으로 가버렸어요. 미국에선 마르크스의 얘기를 해도 아무도 간섭을 하지 않아요. 그리고 오히려 마르크시스트가 돈은 더 벌어요. 그런데 고지식한 나의 친구 세명은 북한으로 갔어요. 그 땐 친구들에겐 두 가지 길밖에 없었어요. 하나는 남로당계로 숙청 당하는 길이었고, 하나는 김일성이라는 잘못된 신을 섬기는 길이었지요. 어쨌든 그들은 일생을 망쳤지만, 시련을 위해서 일했지요. 그런데 그때 도망친 겁쟁이인 내가 일을 더 했어요. 그래서 인생이란 끝이 없어요.
황 : 그래서요?
백 : 마르크스는 똑똑했지만 마르크시스트는 바보라고 나는 생각해요. 마르크스는 증기기관차가 나왔던 18세기의 이론가지요. 그 후에 석유가 나오고 가솔린이 나오고 컴퓨터가 나왔어요. 그런데 옛날의 마르크스를 아직도 그래도 외우는 놈이 있어요. 그건 세상의 천치바보지요.
황 : 그렇다면...
백 : 마르크시스트는 바보지만, 그렇다고 마르크스에게 배울 것이 하나도 없느냐? 그렇지는 않아요. 당시 기계혁명이 일어났지만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욱 가난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 문제를 소위 비평적 시각에서 하드웨어를 소프트웨어로 복귀시키려고 노력한 사람이 바로 마르크스입니다. 그의 이론이 증기기관차가 사라진 1920년까지는 어느 정도 가치(merit)가 있었어요. 그러나 그 후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어요.
황 : 정치철학에서도 경제학자로서의 마르크스가 실패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다고 말합니다. 그가 예언했던 자본주의의 붕괴필연성은 결국 중산층의 대두를 그가 예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잘못된 이론일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에리히 프롬같은 사람이 주장하는 휴머니스트로서의 마르크스는 아직도 강세를 떨치고 있으면, 레닌이 주장하는 혁명가로서의 마르크스도 완전히 죽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말하는 마르크스는 경제학자로서의 마르크스를 지칭하는 것 같은데요.
백 : 정치학자들도 이젠 동구라파를 보고 마르크스를 말하지 않아요. 학질을 떼었으니까요.
황 : 그래서 요즘 동구의 철학 교수들은 전부 실업자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마르크시즘을 배우려는 학생들이 없어서요.
백 : 그들은 모두 기회주의자들이지요. 그러나 우리 플럭서스 중에서는 두 사람의 위대한 정치가가 나왔어요. 하나는 리투아니아 대통령이고, 또 하나는 체코슬로바키아의 가장 유명한 레지스탕스지요. 그런데 이 친구는 3배 60번 체포를 당했는데 따귀 한 대 맞지 않았대요. 동구라파도 인권은 보장되어 있어요. 하여간, 이 친구가 60~70년대에 뉴욕에서 살면서 먹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국으로 돌아갔지요.
황 : 신념에 의해서요?
백 : 네, 뉴욕의 아스팔트 정글이 싫다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다시 체포되고 했지요. 체코에는 또 하벨이란 사람도 유명하지요.
황 : 하벨이라면 이번에 체코의 대통령으로 추대된 사람 아닙니까? 원래 오랫동안 극작가로서 저항운동을 했고요.
백 : 그렇지요. 그 사람은 극작가로 유명하지만 우리 친구는 조형미술로 유명하고, 사실은 하벨 이전부터 지하운동을 했지요.
황 : 선생님의 얘기를 듣고 문득 생각이 났는데요, 예술은 지하운동의 강력한 매체가 될 수 있을까요?
백 : 그럼요, 특히 동구에서는 예술가들이 저항운동을 많이 했어요. 하벨도 자신이 대통령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며, 또한 하고 싶지도 않았겠지요. 그저 사람이 없으니까 맡게 되었겠지요. 헝가리의 총리대신도 작가입니다. 사실 경제학자나 정치가들은 모두 기회주의자들입니다. 끝까지 싸운 것은 예술가들 뿐입니다.
황 : 예술가들이야말로 자유의 공기를 마시지 않고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사람들이니까 그렇겠지요.
백 : 그리고 예술가는 - 불교적으로 말하면 - 체념해서 출세욕이 없어요.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하벨이 뭐니뭐니해도 부자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 돈으로 쭉 살면서 공산당에 협력할 필요가 없었어요. 그리고 동구의 저항 예술가들은 그들의 작품을 외국에서 판매하여 먹을 것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먹고사는 것은 중요해요.
"동양과 서양은 그렇게 틀리지 않아요"
황 : 선생님은 어디선가 정주유목민(靜住遊牧民)이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생각되는데요,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백 : 황교수님이 정말 리서치를 많이 했군요. 그 것은 원래 오일쇼크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하면 사람은 움직이지 않고 사람의 아이디어를 움직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나온 말입니다. 왜 60킬로의 사람을 움직이는데 3백킬로의 자동차를 움직여야 되는가? 뭐, 이런 문제지요. 요즘의 팩시밀리 같이 아이디어만 움직이려는 시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케냐로 직접 갈 수도 있지만 텔레커뮤니케이션으로 공부하면 1시간이 10시간이 될 수도 있지요.
황 : 그 것을 영어로는 뭐라고 합니까?
백 : 미래학자들은 'Stationary Nomad'라고 하더군요.
황 : 그래서 사람이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아이디어를 마음대로 전달하고, 더 나아가서는 상호교제까지도 할 수 있고요.
백 : 네, 상호교제도 가능하지요. 프랑스에서는 한 때 각 가정에 컴퓨터 터미널을 공짜로 공급했지요. 처음에 그들은 이 단말기를 사용할 줄도 몰랐어요. 그러나 공짜니까 받아서 쓰다 보니 자연히 국민의 일체감까지도 조장하게 되었지요.
황 : 정주유목민이라는 개념은 동양사상과도 비슷하다고 보이는데요. 동양에도 옛날부터 '정중동'(靜中動)이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또 도교에서는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 라고 해서, 하지 않으면서 안하는 것이 없다는 말이 있지요. 그러니까 선생님의 예술관, 다시 말해서 움직이지 않으면서 움직이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 창조하는 행위와 동양사상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백 : 그 것이 바로 체념이고 무사무념의 세계지요.
황 : 그럼 선생님은 동양사상과 서양사상사이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믿습니까?
백 : 난 점진적인 차이(gradual change)는 있어도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고 믿어요. 왜냐하면 서양사상의 두 줄기는 희랍사상과 히브리 사상인데, 히브리 사상은 동양사상과 꼭 같거든요. 그래서 이스라엘인들은 나더러 동양의 이스라엘인이라고 해요. 이 쪽에 사는 동양인과 저 쪽에 사는 동양인이란 뜻이지요.
황 : 우리가 그 것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서양사상이라면 플라톤의 이원론으로 대표되는 '희랍사상'만 생각합니다. 정신과 육체, 인간과 신, 감성과 지성 식으로... 서양사상의 더욱 오래된 또 하나의 줄기인 히브리 사상을 모르고 있어요.
백 : 네.
황 : 그럼 결국 동양과 서양의 차이는 좀 느리게 하는 것과 빨리 하는 것의 차이라는 뜻입니까?
백 : 아니, 동양과 서양은 그렇게 틀리지 않아요. 동서양 누구든지 돈 벌고 싶고, 권력잡고 싶고, 누구든지 젊은 여자 많이 갖고 싶어해요.
황 : 그래서 선생님은 '바이 바이 키플링'과 같은 작품을 만들었군요.
백 : 서양에서도 키플링을 잊은 지가 수백 년이 되었어요. 그래서 내가 읊으니까 그 사람이 누구냐고 묻더군요.
황 : 그리고 키플링의 '동서의 발라드'라는 4행시도 처음에는 "오, 동양은 동양이며 서양은 서양이라 / 그들은 영원히 만나지 않을 것이다 / 땅과 하늘이 신의 위대한 심판석에 설 때까지는" 이라고 시작하지만, 그 다음에는 바로 "그러나 동양도 없고 서양도 없을 것이다 / 국경도 인종도 출신도 없을 것이다 / 땅의 양 쪽 끝에서 온 두 명의 강자가 얼굴을 맞대고 설 때는" 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키플링도 동서양의 만남을 주장했지 않습니까?
백 : 그저 할 일이 없으니까 그런 이름을 붙였지요. 하여간 '바이 바이 키플링'이란 제목이 참 좋았어요.
"언어의 경직성에서 벗어나는 것이 12세기의 살길입니다"
황 : 선생님이 보시기에 현재 우리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백 : 현재 한국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21세기에 살아 남는 것이고, 살아 남으려면 하이테크의 무역을 해야 되는데, 한글을 가지고는 무역을 할 수 없어요. 그건 절대로 안됩니다. 그래서 내가 3~4년 전부터 한국에 올 때마다 이어령 장관부터 유명한 사람들한테 한글은 참 좋은 글이지만 이젠 안된다고 말해요. 마치 18세기의 마르크스를 21세기에 써먹을 수 없듯이, 15세기 세종 때 만든 한글을 가지고 이제 어떻게 살아요? 그래도 아무런 반응이 없지요. 한국인들이 다른 것은 다 잘하는데 한글에 대해서는 관념이 고정되어 있어요.
황 : 혹시 과도기적인 현상이 아닐까요? 지금까지 우리 나라 문화는 서양 일변도였거든
백 : 일본 일변도였지요.
황 : 선생님이 한국에 계실 때는 그랬지만 해방 이 후에는 완전히 서양 사상이었어요. 내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똑똑한 학생은 의례히 동양사보다는 서양사를 공부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거기에 대한 반동으로 - 선생님이 보시기에는 국수주의적이겠지만 - 요즘 모두 한국적인 것을 찾는다고 혈안이 찾는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요즘은 반대쪽으로 치우쳐 있습니다. 아마 언젠가는 중용의 지혜를 찾아야 하겠지만.
백 : 일정시대 일본인들이 특히 한글학자들을 혹독히 때렸지요. 어떤 사람은 감옥에서 나올 때 손톱이 하나도 없었고, 또 다른 사람은 아예 나오지 못하고 죽기도 했지요. 그래서 해방이 되었을 때 우리들이 사용하는 어휘의 3분의 2가 일본어였지요. 그래서 우리는 시급하게 국어정화를 할 필요가 있었고, 그 것이 한 10~15년 걸렸지요.
황 : 네.
백 : 오늘날에는 일본어가 아니라 서양 어가 매일매일 들어오니까 세월이 변했어요. 너무나 한글을 그래도 놔두고 한자만 없애니까 도대체 외래어를 몰라요. 그래서, 황교수님은 다르지만, 인터뷰를 보면 서양의 인명, 고유명사를 너무 몰뗄? 그래서 나는 확신합니다. 한글을 고치지 않으면 큰 코 다칩니다. 인문과학은 말할 것도 없고, 우선 자연과학을 할 수 없어요. 유전공학, 물리학, 컴퓨터공학을 한글로 어떻게 합니까?
황 : 네.
백 : 현재는 일본에서 온 한자를 한글로 고쳐서를 한글로 고쳐서 쓰고 있어요. 아무도 그 뜻을 몰라요. 하느님도 몰라요. 그래서 나는 아예 영어로 말해요. 그런데 영어도 안 통해요. 이런 식이니까 지난 번 국제수학대회에서 한국의 실력이 개떡이 될 수밖에 없지요.
황 :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했지요.
백 : 요컨대 한국은 훌륭한 과학자가 필요해요. 그런데 천 명의 훌륭한 과학자가 나오려면 십만 명의 일반 과학도가 있어야 해요. 그 십만 명이 '사이언티픽 아메리컨'을 읽어야 해요. 그런데 이 사이언티픽 어메리컨은 절대로 순 한글로 번역할 수 없어요.
황 : 그렇습니까?
백 : 우리 나라 사람들은 머리도 좋고 공부도 많이 해요. 죄는 어문(語文)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모든 어문은 두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어야 해요. 하나는 민족통일의 상징이고, 하나는 필요품, 편리품의 기능입니다. 그리고 편리품으로서의 언어는 가치 중립적입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언어의 정신적 상징은 강조하면서도 편리품의 기능을 상실했어요.
황 : 네.
백 : 앞으로는 국가의 독립이나 민족의식의 강약이 중요하지 않아요. 누가 하이테크를 주도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정신적으로 강해도 무역전에서 패배하면 끝장입니다. 외국자본전부 들여와서 나라 송두리째 뺏기면 그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외국의 지식의 빨리 만회하여 그 것을 이용한 하이테크를 외국에 팔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자승자박을 하고 있어요. 이러면 나라의 장례는 없어요.
황 : 어떤 실례가 있습니까?
백 : 독일과 프랑스를 비교하면 잘 알 수 있어요. 프랑스는 열등감이 많아서 영어에서 나오는 불어 단어를 전부 없앴어요. 자승자박이지요. 그러나 독일은 자신이 있으니까 매년 가서 보면 신조어가 많아요. 일본도 자신이 있으니까 신조어가 많아요. 신조어를 많이 만드는 나라가 승리합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해방 후 40년동안 신조어를 없애려고만 해요.
황 : 요즘은 방송에서도 외래어 사용을 굉장히 단속하고 있습니다.
백 : 해보려면 해보라고 하지요. 어떻게 되나 보세요.
황 : 한글에 대한 경직성을 타파하자. 이 것이 현재 우리 나라에 가장 중요한 일입니까?
백 : 틀림없어요.
"일본의 군국주의가 '선'을 이용했다는 걸 아세요?"
황 : 한국의 불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백 : 외국에서는 선을 일본 것이라고 해요. 물론 역사적으로는 불교가 인도, 중국, 한국을 거쳐서 일본으로 전파되었지요. 그런데 일본어로 된 '조선 상고사'라는 책을 보았더니 한국 불교의 절반이 선이라고 말했더군요.
황 : 불교를 흔히 선(禪)과 교(敎)로 나눕니다.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만, 한국 불교는 절반 이상이 선이라고 할 수 있지요. 우선 불교 종단 중에서 가장 큰 조계종이 선종이라고 할 수 있고요.
백 : 그래요?
황 : 더구나 현재 중국 본토는 공산화되고 일본의 선은 너무 형식화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외국인들이 선 수행을 하기 위해 한국을 찾아보고 있으면, 어떤 사람은 한국이야말로 선의 정통을 가장 잘 지키고 있는 곳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습니다.
백 : 그러나 외국에선 모두 선이라면 일본 불교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 나라가 선의 정통을 더욱 잘 지키고 있다는 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하면 어떤 방법으로 한국의 선불교의 실지회복이 가능할까요?
황 : 그 것은 종교철학을 전공하는 저로서도 상당히 가슴 아프면서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미국에서도 종교철학이라고 하면 당연히 중국과 일본이 나오지만 한국은 없어요. 왜 이렇게 되었느냐? 선생님이 조금 전에 말한 어문정책과도 관련이 있는지는 몰라고, 우리 나라에는 일본의 스즈끼와 같은 영어로 쓴 불교서적이 별로 없습니다. 물론 보조국사 지눌의 교시가 외국 학자에 의해 최근에 번역되기도 했으며, 원효의 '대승기신론소'가 일어로 번역되어 있습니다만, 이건 정말 새발에 피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선을 책으로 외국인에게 알리기는 상당히 어렵고, 그저 "직접 와서 봐라"고 할 수밖에 없으나, 이 것도 상당히 어려운 얘기지요.
백 : 우선 한국, 중국, 일본의 선이 다른 점이 있습니까?
황 : 완전히 다르지요. 그 것은 단순히 중국에서는 '찬'이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젠'이라고 하는 차이가 아닙니다. 우선 중국의 선은 상당히 현실적, 실용적, 실제적이라고 할 수 있지요. 원래 인도 불교가 가지고 있던 내세 지향적이 것이 중국에서 현세 지향적으로 변했지요.
백 : 그런 것은 한국에도 있지 않아요? 아낙네들이 돈 바치고 불공드리면서 아들 입학시험이나 사업 잘 되라고 빌지 않아요? 그리고 부적까지 사지 않습니까?
황 : 그런 미신적인 것은 모든 종교가 가지고 있지요. 기독교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난 종종 우리 나라에는 종교는 많지만 실제로는 샤머니즘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기독교나 불교가 모두 이런 샤머니즘적인 요소로 성장하고 있으니까요.
백 : 그럼 일본의 선은 어떻습니까?
황 : 일본의 선은 너무 기계화되고 정형화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조건적인 훈련을 사용합니다. 이런 극기훈련 같은 매질이 도리어 서양인에게 호소력이 있기는 하지만요.
백 : 일본의 불교는 부처님을 윽박지르고 있어요. 일본의 선은 새디즘입니다. 그런데 한국에는 중국의 '벽암록'같은 고전이 없습니까?
황 : 이미 말씀드린 원효와 지눌의 교본 이외에도 서산대사의 '선가귀감'이 있지요. 그러나 영어로 완벽하게 번역되어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한국에 선은 있으나 선학은 없다"는 말도 하더군요. 그만치 수행은 있으나 학문적으로 체계화된 작업은 부족하다는 말이지요.
백 : 그리고 한국 불교학자 중에 일본의 군국주의가 선을 이용했다는 사실을 폭로한 사람은 없습니까?
황 : 저는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백 : 그건 한국 불교학자들의 태만이군요. 특히 한국은 일본에 대해 그렇게 반발심이 많으면서도...
황 : 저는 불교를 전공하지는 않지만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백 : 그리고 일본의 신화적 존재인 스즈끼도 영어로 쓴 책과 일본어로 쓴 책의 내용이 전혀 달라요. 일본어 책에는 만주사변이 전부 정당화되어 있지요. 그러나 영어로는 그렇게 쓰지 않았어요. 그리고 독일에서는 '일본 황군의 기존정신으로서의 선'이라는 책도 나왔어요. 거기에 보면 도꾸다이도 선이고, 하라구리도 선입니다. 일본 육군의 기본정신은 죽으라면 죽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그 것을 쓴 한국 학자가 하나도 없어요.
황 :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저는 아직 그런 학자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나라 불교학은 아직은 일본 불교학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잇지요.
백 : 아니, 일본 놈들의 약점을 빤히 알고도 지적을 안해요? 요즘 독일에서는 하이데거 와 나치즘의 관계가 속속히 밝혀지고 있는데요, 내가 보기엔, 선과 일본 제국주의와의 야합은 간단히 쓸 수 있어요. 그 것을 못쓰면 바보에요. 그러면서 무슨 민족주의를 떠들어요.
황 : 죄송합니다. 전 민족주의자가 아니라서...
백 : 아니,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여편네가 있어요"
황 : 현재 선생님이 공식적으로 거주하는 곳은 어딥니까?
백 : 1년이면 뉴욕에 한 9개월 삽니다.
황 : 뉴욕의 맨해튼입니까?
백 : 네.
황 : 맨해튼의 어딥니까?
백 : 소호지요.
황 : 참 좋은 지역에 사십니다.
백 : 예술을 하려면 거기 살아야지요.
황 : 가족사항은?
백 : 여편네가 있어요. 어린애는 없고요.
황 : 왜 자제 분은 없습니까? 안 갖는 겁입니까? 못 갖는 것입니까?
백 : 안 낳으면 없는 거지요. 그리고 여편네도 예술을 많이 하니까요.
황 : 질문의 방향을 돌리겠습니다. 우리 나라의 남북통일은 곧 되겠습니까?
백 : 소련이 쿠바에 원조를 중단했지요? 그러면 3~4년 이내에 쿠바는 항복을 할 쇌. 북한도 안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결국 경제가 어떻게 되느냐에 달려있지요.
황 : 선생님이 마르크시스트라는 말씀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마르크스의 표현대로 "의식이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뜻이겠지요. 이런 생각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계시군요.
백 : 물론이죠. 비디오도 과학적으로 만들어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 것이 바로 마르크스 사상인 마르크스 사상이지요.
황 : 선생님은 북한에서도 초청을 해도 물론 가시겠지요?
백 : 날 초청도 안 하겠지만 현재는 갈 시간도 없어요.
황 : 만약 초청을 한 다면요.
백 : 3년 후에나 혹시... 그때는 소련에서 특별쇼를 할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황 : 그럼 앞으로 3년간은 스케줄이 꽉 차 있단 말씀입니까?
백 : 네.
황 : 상당히 불행하시군요.
백 :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데요.
황 : 끝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은-.
백 : 남의 나라를 치는 것보다 우리가 잘 해야 되고, 우리가 잘하면 일본이 아무리 강대해져도 우리는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군요. 그러니까 절대 자기 공부는 하지 않고 남에게 과시만 하려고 하지 말아야 되요.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언어라는 방편입니다. 언어에 대해서 눈가리고 국수주의 내리고 있으면 21세기에 큰 코 다칩니다. 나는 미술을 공부한 사람이니까 달 알지만, 미술은 당장 떨어져요. 그러나 우선 과학과 생물에서 떨어져요.
황 : 결국 세계는 하나라는 말씀입니까?
백 : 세계 각처에서 새 연구가 나오고 있어요. 이젠 미국인들도 일본어를 배웁니다. 일본어로 쓴 과학 논문이 많이 나오니까요. 또 미국에서는 일본 논문을 번역하는 팀이 생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는 순수만을 외치고 있어요. 이러다간 굶어 죽게 됩니다.
황 : 이미 말했지만, 이 것은 지나친 외세종속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어떤 반 작용일 수도 있겠습니다. 언젠가는 다시 선생님이 표현하신 국수주의적인 요소를 탈피하여 과학, 예술, 종교를 중용의 입장에서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백: 너무 듣기 싫은 말을 해서 미안합니다.
황 : 아닙니다.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황 : 우선 바쁘신 데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한국에서는 조금 유명한 편입니다만, 선생님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분입니다. 선생님이야말로 '무관의 제왕'이라 해도 결코 틀린 말이 아닐텐데요.
백 : 아니요, 그러지 마세요.
황 : 선생님 행복하십니까?
백 : 뭐 바쁘면 행복이지요.
황 : 그러나 너무 바쁘면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백 : 시간 가는 걸 모르고 잊어버리면 행복하지요. 할 일이 없으면 머리가 뱅뱅 돌아서 우울해지니까요. 난 적당히 바쁘고 적당히 놀고 그럽니다.
황 : 놀기도 하세요?
백 : 난 예술가니까, 논다는 것과 예술을 한다는 것은 마찬가지가 되지요.
황 : 그럼 놀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백 : 글쎄 난 워낙 그렇게 일 많이 하지 않아요.
황 : 쉴 땐 어떻게 쉬세요.
백 : 그저 가만히 침대에 누워서 행사 생각하고...
황 : 제가 알기로는 지난여름이 선생님의 세 번째 공식적인 귀국이라고 생각되는데요, 34년만에 1984년에 오셨고, 88올림픽때 오셨으면 그때가 세 번째 아닙니까?
백 : 그래도 일년에 한두 번쯤은 와요.
황 : 한국에 올 때마다 특별히 느끼신 점은?
백 : 잘 살게 되면 문화도 높아지지요.
황 : 선생님이 계속 한국에 계셨다면 예술활동을 하셨을까요?
백 : 했겠지요. 미디어 아트나 작곡 같은 것을 했겠지요. 성공했을는지는 모르지만, 또 성공할 필요도 없고요. 요컨대 진정으로 하고 싶으면 하게 됩니다.
황 : 선생님은 한국인입니까? 미국인입니까? 세계인입니까?
백 : 뭐 그런 거 생각 안해요. 좌우간 우린 매달매달 예술을 해서 일년에 한번쯤은 신문에 나야 되고, 그걸 위해서는 절대적 책략이 있어야지요. 그렇게만 생각합니다. 아인슈타인이 뭐 자신을 유태인이라고 생각했겠소? 독일인이라고 생각했겠소? 자기 진리만 있으면 되지요.
황 : 얘기를 들으니까 선생님이야말로 예술을 위해 국경을 초월한 분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백 : 그래도 국경을 지날 때는 항상 남들이 '째리니까' 할 수 없지요(웃음).
"인연이란 참 오묘한 거지요"
황 : 지난번의 퍼포먼스에는 '백남준+굿+요셉 보이스 추모제'란 긴 제목이 붙었더군요. 왜 하필 '우랄 알타이의 꿈'이라고 붙이셨습니까?
백 : 이 꿈은 차츰차츰 시작된 거예요. 인연이라고 할 수 있지요. 불교의 '인연'을 산스크리트어로 뭐라고 합니까?
황 : 네, '헤투 프라타야'(hetu-pratyaya)라고 합니다만...
백 : 어떤 사람은 '카르마'라고 하던데요.
황 : 카르마는 보통 '업(業)'이라고 번역합니다.
백 : '인연'이란 말이 참 재미있는 표현이거든요. 인은 중심이고, 연은 가장자리지요. 그러니까 우연과 필연이 결부된 관계입니다. 알다시피 선불교는 바로 인연을 체득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성불한다고 하지요. 그런데 그것을 영어로 번역 하려면 문제가 생기지요.
황 : 영어로는 보통 인과법칙이란 뜻으로 'Principle of Causation'이나 'Principle of Cause and Effect'라고 말하고, 인연에 의하여 생긴 삼라만상을 'Causally Conditioned Phenomena'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제가 특별히 좋아하며 - 또한 많은 학자들이 사용하는 - 용어로는 'Dependent Co-origination'이나 'Dependent Co-arising'이라는 번역입니다. 서로 독불장군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서로서로 의존해서 생겨났다는 뜻이지요. "이것이 있으니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니 이것이 있다"는 연기의 개념을 잘 전달해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연기를 보면 바로 깨달은 사람이 된다고 불교는 가르칩니다.
백 : 그렇죠. '일즉다(一卽多)' '다즉일(多卽一)' 이지요. 그런데 'Dependent Co-origination이라는 말은 누가 만든 영어에요?
황 : 그건 제가 확실히 모릅니다만, 어쨌든 영어권에서는 대개 그렇게 공식화하고 잇습니다.
배: 그래요? 좌우간 좋은 말을 들었습니다. 여기에 적어 놓겠습니다.
황 : 저도 좋은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이란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 의존해서 상생(相生)한다는 뜻이니까요.
백 : 그러니까 일종은 'Causal and Casual Interrelationship'이지요.
황 : 인과적 및 비인과적 상호관계네요.
백 : 그런데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Causal'과 'Casual'이 모두 '카'라는 발음으로 시작합니다만, 나는 산스크리트어를 전혀 모르지만, '카'라는 것은 '집'리란 뜻도 있고 '자비'란 뜻도 있잖아요? 산스크리트에서 '카'란 무슨 뜻입니까? 'Causal'과 'Casual'은 아주 비슷하면서도 정반대의 뜻이거든요.
황 :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는 진정한 우정이나 순수한 친애를 가리키는 '자'(慈, maittri)와 동정이나 연민을 가리키는 '비'(悲, Karuna)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니까 자비라는 표현에도 '카'라는 발음이 있습니다. 하여간 자비란 다른 사람의 고통에 스스로 참여함으로써 동고동락하는 마음으로 슬퍼하고, 더 나아가서는 그를 직접 도와주려는 우정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인연 얘기를 하십니까?
백 : 보이스에 대한 추모제가 어떻게 발전했는냐고 물어서, 인연이 차츰차츰 발전한 것이라는 뜻이지요. 마치 밥을 먹다가 식용이 나면 더 먹듯이 말입니다. 왜 '우랄 알타이의 꿈'이냐? 그것도 다 인연 아닙니까?
황 : 네, 그렇군요.
"요셉 보이스는 시골사람입니다"
황 : 선생님과 인연을 맺었던 요셉 보이스는 어떤 사람입니까?
백 : 보시스는 물교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지요. 그는 생명력이 강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그는 시골사람입니다. 시골사람이라는 게 중요해요. 난 비교적 시골사람을 좋아해요. 보이스는 네덜란드와 독일의 국경에서 태어난 시골사람이에요. 사실은 화란인 이지만 독일 국적을 가지고 있어서 1940년에 독일공군에 자원을 했어요. 왜 자원을 했는냐고 물었더니, 고등학교 클래스메이트들이 전부 전장에 나가서 죽어서 그들과 같이 죽으려고 나갔다고 하더군요. 하여간 그가 침략전쟁에 참여한 것은 약점이지요. 그건 그렇고, 이 사람이 비행사고로 전쟁에 나가서 '돈오'를 했어요. 영어로는 'Enlightenment'라고 하는데 순수한 우리말로는 뭐라고 합니까?
황 :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백 : 그리고 체념을 우리 말로 뭐라고 해요?
황 : 그냥 '체념'이라고 합니다.
백 : 불교가 굉장히 역사가 길지요. 그리고 부녀자 신도들이 많았잖아요? 그러면 대중화된 순수한 조선말이 나왔어도 괜찮았을텐데요.
황 : 원래 불교가 중국으로부터 한국에 들어왔기 때문에 처음부터 한자 용어를 많이 사용하게 되었겠지요. 그러나 선생님 말씀대로 깨달음과 같은 우리의 고유한 표현이 없다는 것은 좀 섭섭한 일이군요.
백 : 언어가 중요해요.
황 : 요즘은 '체념'을 그냥 '포기'라는 뜻으로 사용하지만, 원래는 이 뜻 이외에도 '도리를 깨닫는 마음'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니르바나'라는 표현도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뜻보다는 마음이 고요한 상태로 돌아간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보이스는 전쟁을 통해서 세상이 귀찮다는 비관적인 의미가 아니라 고요한 무념무상의 상태로 들어갔다는 뜻입니까?
백 : 그러니까 보이스의 문제는 바로 체념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는 소련 상공에서 비행하다가 총알이 왼쪽으로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나와서 불시착을 했어요. 그런데 타타르족인 몽고인들이 심장이 완전히 끊어진 그의 옷을 발가벗겨져 버터를 온몸에 흠뻑 칠했어요. 그랬더니 버터의 온기가 피부를 통해 몸 속으로 들어가서 다시 호흡을 시작했어요. 그때 이 사람이 돈오를 했어요. 뭘 깨달았어요. 한 번 죽었다 살아나면 세상을 달리 보는 게 불교적 체념이 아니에요?
황 : 아, 그래서 '우랄 알타이의 꿈'이 나왔군요. 그런데 이 보이스가 선생님에게 미친 영향은 무엇입니까?
백 : 사람들은 그가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나에게 큰 영향을 일방적으로 주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내가 그보다 한 3년 먼저 유명해졌어요. 그러니까 상부상조의 관계라고 말할 수 있지요. 하여간 그는 최초로 나를 알아준 사람이에요. 누구든지 자기를 알아주면 좋지 않아요? 내 해프닝이 좋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의 얼굴이 모든 신고를 다 앓고 체념으로 살아온 고생의 모습, 마치 무기징역 마치고 나온 사람의 모습이었어요. 죄가 잇든 말든 간에.
황 : 그렇습니까?
백 : 난 언제나 극단적인 가치(extreme values)에 흥미가 있어요.
"예술이란 본능을 따르는 행위입니다"
황 : 사실 선생님은 요셉 보이스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가들과 관계도 항상 매스컴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존 케이지와의 관계도 마찬가진데요, 선생님은 그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하지만, 그는 선생님이 주장하는 만큼 선생님에게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백 : 케이지로부터는 많은 영향을 받았지요. 그러니까 그의 말은 겸손의 말이기보다는 오히려 그가 나 때문에 가끔 당혹감을 느겼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원래 예술이란 본능을 따르는 행위입니다.
백 : 네, 그렇지요.
황 : 지금까지 선생님은 이른바 한국적인 것의 허상과 경제의 실상을 주장하셨는데요, 선생님은 혹시 종교를 가지고 계십니까?
백 : 종교는 없어요. 마르크시스트입니다.
황 : 마르크시스트라고요?
백 : 그럼요, 제일 가깝지요.
황 : 무슨 뜻입니까?
백 : 난 바보 마르크시스트는 아니에요.
황 : 마르크시스트에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제가 아는 한, 마르크스에 대해서 최소한 네 가지 시각이 있습니다. 첫째는 과학자나 경제학자로서의 마르크스, 둘째는 혁명가로서의 마르크스, 셋째는 유사 종교가로서의 마르크스, 넷째는 휴머니스트로서의 마르크스가 잇습니다. 선생님은 어떤 의미의 마르크시스트 입니까?
백 : 내가 마르크스를 배운 다음에 장사하지 않고 예술 하겠다고 하니까 다들 웃더군요. 그러니까 나는 마르크스한테 큰 은혜를 입었지요.
황 : 무슨 뜻입니까?
백 : 난 약은 놈이니까 홍콩으로 도망쳤어요. 화려한 망명이었지요. 그리곤 미국으로 가버렸어요. 미국에선 마르크스의 얘기를 해도 아무도 간섭을 하지 않아요. 그리고 오히려 마르크시스트가 돈은 더 벌어요. 그런데 고지식한 나의 친구 세명은 북한으로 갔어요. 그 땐 친구들에겐 두 가지 길밖에 없었어요. 하나는 남로당계로 숙청 당하는 길이었고, 하나는 김일성이라는 잘못된 신을 섬기는 길이었지요. 어쨌든 그들은 일생을 망쳤지만, 시련을 위해서 일했지요. 그런데 그때 도망친 겁쟁이인 내가 일을 더 했어요. 그래서 인생이란 끝이 없어요.
황 : 그래서요?
백 : 마르크스는 똑똑했지만 마르크시스트는 바보라고 나는 생각해요. 마르크스는 증기기관차가 나왔던 18세기의 이론가지요. 그 후에 석유가 나오고 가솔린이 나오고 컴퓨터가 나왔어요. 그런데 옛날의 마르크스를 아직도 그래도 외우는 놈이 있어요. 그건 세상의 천치바보지요.
황 : 그렇다면...
백 : 마르크시스트는 바보지만, 그렇다고 마르크스에게 배울 것이 하나도 없느냐? 그렇지는 않아요. 당시 기계혁명이 일어났지만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욱 가난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 문제를 소위 비평적 시각에서 하드웨어를 소프트웨어로 복귀시키려고 노력한 사람이 바로 마르크스입니다. 그의 이론이 증기기관차가 사라진 1920년까지는 어느 정도 가치(merit)가 있었어요. 그러나 그 후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어요.
황 : 정치철학에서도 경제학자로서의 마르크스가 실패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다고 말합니다. 그가 예언했던 자본주의의 붕괴필연성은 결국 중산층의 대두를 그가 예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잘못된 이론일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에리히 프롬같은 사람이 주장하는 휴머니스트로서의 마르크스는 아직도 강세를 떨치고 있으면, 레닌이 주장하는 혁명가로서의 마르크스도 완전히 죽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말하는 마르크스는 경제학자로서의 마르크스를 지칭하는 것 같은데요.
백 : 정치학자들도 이젠 동구라파를 보고 마르크스를 말하지 않아요. 학질을 떼었으니까요.
황 : 그래서 요즘 동구의 철학 교수들은 전부 실업자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마르크시즘을 배우려는 학생들이 없어서요.
백 : 그들은 모두 기회주의자들이지요. 그러나 우리 플럭서스 중에서는 두 사람의 위대한 정치가가 나왔어요. 하나는 리투아니아 대통령이고, 또 하나는 체코슬로바키아의 가장 유명한 레지스탕스지요. 그런데 이 친구는 3배 60번 체포를 당했는데 따귀 한 대 맞지 않았대요. 동구라파도 인권은 보장되어 있어요. 하여간, 이 친구가 60~70년대에 뉴욕에서 살면서 먹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국으로 돌아갔지요.
황 : 신념에 의해서요?
백 : 네, 뉴욕의 아스팔트 정글이 싫다는 거예요.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다시 체포되고 했지요. 체코에는 또 하벨이란 사람도 유명하지요.
황 : 하벨이라면 이번에 체코의 대통령으로 추대된 사람 아닙니까? 원래 오랫동안 극작가로서 저항운동을 했고요.
백 : 그렇지요. 그 사람은 극작가로 유명하지만 우리 친구는 조형미술로 유명하고, 사실은 하벨 이전부터 지하운동을 했지요.
황 : 선생님의 얘기를 듣고 문득 생각이 났는데요, 예술은 지하운동의 강력한 매체가 될 수 있을까요?
백 : 그럼요, 특히 동구에서는 예술가들이 저항운동을 많이 했어요. 하벨도 자신이 대통령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며, 또한 하고 싶지도 않았겠지요. 그저 사람이 없으니까 맡게 되었겠지요. 헝가리의 총리대신도 작가입니다. 사실 경제학자나 정치가들은 모두 기회주의자들입니다. 끝까지 싸운 것은 예술가들 뿐입니다.
황 : 예술가들이야말로 자유의 공기를 마시지 않고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사람들이니까 그렇겠지요.
백 : 그리고 예술가는 - 불교적으로 말하면 - 체념해서 출세욕이 없어요.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하벨이 뭐니뭐니해도 부자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 돈으로 쭉 살면서 공산당에 협력할 필요가 없었어요. 그리고 동구의 저항 예술가들은 그들의 작품을 외국에서 판매하여 먹을 것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먹고사는 것은 중요해요.
"동양과 서양은 그렇게 틀리지 않아요"
황 : 선생님은 어디선가 정주유목민(靜住遊牧民)이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생각되는데요,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백 : 황교수님이 정말 리서치를 많이 했군요. 그 것은 원래 오일쇼크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하면 사람은 움직이지 않고 사람의 아이디어를 움직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나온 말입니다. 왜 60킬로의 사람을 움직이는데 3백킬로의 자동차를 움직여야 되는가? 뭐, 이런 문제지요. 요즘의 팩시밀리 같이 아이디어만 움직이려는 시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케냐로 직접 갈 수도 있지만 텔레커뮤니케이션으로 공부하면 1시간이 10시간이 될 수도 있지요.
황 : 그 것을 영어로는 뭐라고 합니까?
백 : 미래학자들은 'Stationary Nomad'라고 하더군요.
황 : 그래서 사람이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아이디어를 마음대로 전달하고, 더 나아가서는 상호교제까지도 할 수 있고요.
백 : 네, 상호교제도 가능하지요. 프랑스에서는 한 때 각 가정에 컴퓨터 터미널을 공짜로 공급했지요. 처음에 그들은 이 단말기를 사용할 줄도 몰랐어요. 그러나 공짜니까 받아서 쓰다 보니 자연히 국민의 일체감까지도 조장하게 되었지요.
황 : 정주유목민이라는 개념은 동양사상과도 비슷하다고 보이는데요. 동양에도 옛날부터 '정중동'(靜中動)이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또 도교에서는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 라고 해서, 하지 않으면서 안하는 것이 없다는 말이 있지요. 그러니까 선생님의 예술관, 다시 말해서 움직이지 않으면서 움직이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 창조하는 행위와 동양사상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백 : 그 것이 바로 체념이고 무사무념의 세계지요.
황 : 그럼 선생님은 동양사상과 서양사상사이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믿습니까?
백 : 난 점진적인 차이(gradual change)는 있어도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고 믿어요. 왜냐하면 서양사상의 두 줄기는 희랍사상과 히브리 사상인데, 히브리 사상은 동양사상과 꼭 같거든요. 그래서 이스라엘인들은 나더러 동양의 이스라엘인이라고 해요. 이 쪽에 사는 동양인과 저 쪽에 사는 동양인이란 뜻이지요.
황 : 우리가 그 것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서양사상이라면 플라톤의 이원론으로 대표되는 '희랍사상'만 생각합니다. 정신과 육체, 인간과 신, 감성과 지성 식으로... 서양사상의 더욱 오래된 또 하나의 줄기인 히브리 사상을 모르고 있어요.
백 : 네.
황 : 그럼 결국 동양과 서양의 차이는 좀 느리게 하는 것과 빨리 하는 것의 차이라는 뜻입니까?
백 : 아니, 동양과 서양은 그렇게 틀리지 않아요. 동서양 누구든지 돈 벌고 싶고, 권력잡고 싶고, 누구든지 젊은 여자 많이 갖고 싶어해요.
황 : 그래서 선생님은 '바이 바이 키플링'과 같은 작품을 만들었군요.
백 : 서양에서도 키플링을 잊은 지가 수백 년이 되었어요. 그래서 내가 읊으니까 그 사람이 누구냐고 묻더군요.
황 : 그리고 키플링의 '동서의 발라드'라는 4행시도 처음에는 "오, 동양은 동양이며 서양은 서양이라 / 그들은 영원히 만나지 않을 것이다 / 땅과 하늘이 신의 위대한 심판석에 설 때까지는" 이라고 시작하지만, 그 다음에는 바로 "그러나 동양도 없고 서양도 없을 것이다 / 국경도 인종도 출신도 없을 것이다 / 땅의 양 쪽 끝에서 온 두 명의 강자가 얼굴을 맞대고 설 때는" 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키플링도 동서양의 만남을 주장했지 않습니까?
백 : 그저 할 일이 없으니까 그런 이름을 붙였지요. 하여간 '바이 바이 키플링'이란 제목이 참 좋았어요.
"언어의 경직성에서 벗어나는 것이 12세기의 살길입니다"
황 : 선생님이 보시기에 현재 우리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백 : 현재 한국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21세기에 살아 남는 것이고, 살아 남으려면 하이테크의 무역을 해야 되는데, 한글을 가지고는 무역을 할 수 없어요. 그건 절대로 안됩니다. 그래서 내가 3~4년 전부터 한국에 올 때마다 이어령 장관부터 유명한 사람들한테 한글은 참 좋은 글이지만 이젠 안된다고 말해요. 마치 18세기의 마르크스를 21세기에 써먹을 수 없듯이, 15세기 세종 때 만든 한글을 가지고 이제 어떻게 살아요? 그래도 아무런 반응이 없지요. 한국인들이 다른 것은 다 잘하는데 한글에 대해서는 관념이 고정되어 있어요.
황 : 혹시 과도기적인 현상이 아닐까요? 지금까지 우리 나라 문화는 서양 일변도였거든
백 : 일본 일변도였지요.
황 : 선생님이 한국에 계실 때는 그랬지만 해방 이 후에는 완전히 서양 사상이었어요. 내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똑똑한 학생은 의례히 동양사보다는 서양사를 공부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거기에 대한 반동으로 - 선생님이 보시기에는 국수주의적이겠지만 - 요즘 모두 한국적인 것을 찾는다고 혈안이 찾는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요즘은 반대쪽으로 치우쳐 있습니다. 아마 언젠가는 중용의 지혜를 찾아야 하겠지만.
백 : 일정시대 일본인들이 특히 한글학자들을 혹독히 때렸지요. 어떤 사람은 감옥에서 나올 때 손톱이 하나도 없었고, 또 다른 사람은 아예 나오지 못하고 죽기도 했지요. 그래서 해방이 되었을 때 우리들이 사용하는 어휘의 3분의 2가 일본어였지요. 그래서 우리는 시급하게 국어정화를 할 필요가 있었고, 그 것이 한 10~15년 걸렸지요.
황 : 네.
백 : 오늘날에는 일본어가 아니라 서양 어가 매일매일 들어오니까 세월이 변했어요. 너무나 한글을 그래도 놔두고 한자만 없애니까 도대체 외래어를 몰라요. 그래서, 황교수님은 다르지만, 인터뷰를 보면 서양의 인명, 고유명사를 너무 몰뗄? 그래서 나는 확신합니다. 한글을 고치지 않으면 큰 코 다칩니다. 인문과학은 말할 것도 없고, 우선 자연과학을 할 수 없어요. 유전공학, 물리학, 컴퓨터공학을 한글로 어떻게 합니까?
황 : 네.
백 : 현재는 일본에서 온 한자를 한글로 고쳐서를 한글로 고쳐서 쓰고 있어요. 아무도 그 뜻을 몰라요. 하느님도 몰라요. 그래서 나는 아예 영어로 말해요. 그런데 영어도 안 통해요. 이런 식이니까 지난 번 국제수학대회에서 한국의 실력이 개떡이 될 수밖에 없지요.
황 :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했지요.
백 : 요컨대 한국은 훌륭한 과학자가 필요해요. 그런데 천 명의 훌륭한 과학자가 나오려면 십만 명의 일반 과학도가 있어야 해요. 그 십만 명이 '사이언티픽 아메리컨'을 읽어야 해요. 그런데 이 사이언티픽 어메리컨은 절대로 순 한글로 번역할 수 없어요.
황 : 그렇습니까?
백 : 우리 나라 사람들은 머리도 좋고 공부도 많이 해요. 죄는 어문(語文)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모든 어문은 두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어야 해요. 하나는 민족통일의 상징이고, 하나는 필요품, 편리품의 기능입니다. 그리고 편리품으로서의 언어는 가치 중립적입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언어의 정신적 상징은 강조하면서도 편리품의 기능을 상실했어요.
황 : 네.
백 : 앞으로는 국가의 독립이나 민족의식의 강약이 중요하지 않아요. 누가 하이테크를 주도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정신적으로 강해도 무역전에서 패배하면 끝장입니다. 외국자본전부 들여와서 나라 송두리째 뺏기면 그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외국의 지식의 빨리 만회하여 그 것을 이용한 하이테크를 외국에 팔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자승자박을 하고 있어요. 이러면 나라의 장례는 없어요.
황 : 어떤 실례가 있습니까?
백 : 독일과 프랑스를 비교하면 잘 알 수 있어요. 프랑스는 열등감이 많아서 영어에서 나오는 불어 단어를 전부 없앴어요. 자승자박이지요. 그러나 독일은 자신이 있으니까 매년 가서 보면 신조어가 많아요. 일본도 자신이 있으니까 신조어가 많아요. 신조어를 많이 만드는 나라가 승리합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해방 후 40년동안 신조어를 없애려고만 해요.
황 : 요즘은 방송에서도 외래어 사용을 굉장히 단속하고 있습니다.
백 : 해보려면 해보라고 하지요. 어떻게 되나 보세요.
황 : 한글에 대한 경직성을 타파하자. 이 것이 현재 우리 나라에 가장 중요한 일입니까?
백 : 틀림없어요.
"일본의 군국주의가 '선'을 이용했다는 걸 아세요?"
황 : 한국의 불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백 : 외국에서는 선을 일본 것이라고 해요. 물론 역사적으로는 불교가 인도, 중국, 한국을 거쳐서 일본으로 전파되었지요. 그런데 일본어로 된 '조선 상고사'라는 책을 보았더니 한국 불교의 절반이 선이라고 말했더군요.
황 : 불교를 흔히 선(禪)과 교(敎)로 나눕니다.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만, 한국 불교는 절반 이상이 선이라고 할 수 있지요. 우선 불교 종단 중에서 가장 큰 조계종이 선종이라고 할 수 있고요.
백 : 그래요?
황 : 더구나 현재 중국 본토는 공산화되고 일본의 선은 너무 형식화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외국인들이 선 수행을 하기 위해 한국을 찾아보고 있으면, 어떤 사람은 한국이야말로 선의 정통을 가장 잘 지키고 있는 곳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습니다.
백 : 그러나 외국에선 모두 선이라면 일본 불교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 나라가 선의 정통을 더욱 잘 지키고 있다는 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하면 어떤 방법으로 한국의 선불교의 실지회복이 가능할까요?
황 : 그 것은 종교철학을 전공하는 저로서도 상당히 가슴 아프면서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미국에서도 종교철학이라고 하면 당연히 중국과 일본이 나오지만 한국은 없어요. 왜 이렇게 되었느냐? 선생님이 조금 전에 말한 어문정책과도 관련이 있는지는 몰라고, 우리 나라에는 일본의 스즈끼와 같은 영어로 쓴 불교서적이 별로 없습니다. 물론 보조국사 지눌의 교시가 외국 학자에 의해 최근에 번역되기도 했으며, 원효의 '대승기신론소'가 일어로 번역되어 있습니다만, 이건 정말 새발에 피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선을 책으로 외국인에게 알리기는 상당히 어렵고, 그저 "직접 와서 봐라"고 할 수밖에 없으나, 이 것도 상당히 어려운 얘기지요.
백 : 우선 한국, 중국, 일본의 선이 다른 점이 있습니까?
황 : 완전히 다르지요. 그 것은 단순히 중국에서는 '찬'이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젠'이라고 하는 차이가 아닙니다. 우선 중국의 선은 상당히 현실적, 실용적, 실제적이라고 할 수 있지요. 원래 인도 불교가 가지고 있던 내세 지향적이 것이 중국에서 현세 지향적으로 변했지요.
백 : 그런 것은 한국에도 있지 않아요? 아낙네들이 돈 바치고 불공드리면서 아들 입학시험이나 사업 잘 되라고 빌지 않아요? 그리고 부적까지 사지 않습니까?
황 : 그런 미신적인 것은 모든 종교가 가지고 있지요. 기독교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난 종종 우리 나라에는 종교는 많지만 실제로는 샤머니즘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기독교나 불교가 모두 이런 샤머니즘적인 요소로 성장하고 있으니까요.
백 : 그럼 일본의 선은 어떻습니까?
황 : 일본의 선은 너무 기계화되고 정형화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조건적인 훈련을 사용합니다. 이런 극기훈련 같은 매질이 도리어 서양인에게 호소력이 있기는 하지만요.
백 : 일본의 불교는 부처님을 윽박지르고 있어요. 일본의 선은 새디즘입니다. 그런데 한국에는 중국의 '벽암록'같은 고전이 없습니까?
황 : 이미 말씀드린 원효와 지눌의 교본 이외에도 서산대사의 '선가귀감'이 있지요. 그러나 영어로 완벽하게 번역되어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한국에 선은 있으나 선학은 없다"는 말도 하더군요. 그만치 수행은 있으나 학문적으로 체계화된 작업은 부족하다는 말이지요.
백 : 그리고 한국 불교학자 중에 일본의 군국주의가 선을 이용했다는 사실을 폭로한 사람은 없습니까?
황 : 저는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백 : 그건 한국 불교학자들의 태만이군요. 특히 한국은 일본에 대해 그렇게 반발심이 많으면서도...
황 : 저는 불교를 전공하지는 않지만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백 : 그리고 일본의 신화적 존재인 스즈끼도 영어로 쓴 책과 일본어로 쓴 책의 내용이 전혀 달라요. 일본어 책에는 만주사변이 전부 정당화되어 있지요. 그러나 영어로는 그렇게 쓰지 않았어요. 그리고 독일에서는 '일본 황군의 기존정신으로서의 선'이라는 책도 나왔어요. 거기에 보면 도꾸다이도 선이고, 하라구리도 선입니다. 일본 육군의 기본정신은 죽으라면 죽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그 것을 쓴 한국 학자가 하나도 없어요.
황 :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저는 아직 그런 학자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나라 불교학은 아직은 일본 불교학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잇지요.
백 : 아니, 일본 놈들의 약점을 빤히 알고도 지적을 안해요? 요즘 독일에서는 하이데거 와 나치즘의 관계가 속속히 밝혀지고 있는데요, 내가 보기엔, 선과 일본 제국주의와의 야합은 간단히 쓸 수 있어요. 그 것을 못쓰면 바보에요. 그러면서 무슨 민족주의를 떠들어요.
황 : 죄송합니다. 전 민족주의자가 아니라서...
백 : 아니,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여편네가 있어요"
황 : 현재 선생님이 공식적으로 거주하는 곳은 어딥니까?
백 : 1년이면 뉴욕에 한 9개월 삽니다.
황 : 뉴욕의 맨해튼입니까?
백 : 네.
황 : 맨해튼의 어딥니까?
백 : 소호지요.
황 : 참 좋은 지역에 사십니다.
백 : 예술을 하려면 거기 살아야지요.
황 : 가족사항은?
백 : 여편네가 있어요. 어린애는 없고요.
황 : 왜 자제 분은 없습니까? 안 갖는 겁입니까? 못 갖는 것입니까?
백 : 안 낳으면 없는 거지요. 그리고 여편네도 예술을 많이 하니까요.
황 : 질문의 방향을 돌리겠습니다. 우리 나라의 남북통일은 곧 되겠습니까?
백 : 소련이 쿠바에 원조를 중단했지요? 그러면 3~4년 이내에 쿠바는 항복을 할 쇌. 북한도 안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결국 경제가 어떻게 되느냐에 달려있지요.
황 : 선생님이 마르크시스트라는 말씀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마르크스의 표현대로 "의식이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뜻이겠지요. 이런 생각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계시군요.
백 : 물론이죠. 비디오도 과학적으로 만들어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 것이 바로 마르크스 사상인 마르크스 사상이지요.
황 : 선생님은 북한에서도 초청을 해도 물론 가시겠지요?
백 : 날 초청도 안 하겠지만 현재는 갈 시간도 없어요.
황 : 만약 초청을 한 다면요.
백 : 3년 후에나 혹시... 그때는 소련에서 특별쇼를 할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황 : 그럼 앞으로 3년간은 스케줄이 꽉 차 있단 말씀입니까?
백 : 네.
황 : 상당히 불행하시군요.
백 :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데요.
황 : 끝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은-.
백 : 남의 나라를 치는 것보다 우리가 잘 해야 되고, 우리가 잘하면 일본이 아무리 강대해져도 우리는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군요. 그러니까 절대 자기 공부는 하지 않고 남에게 과시만 하려고 하지 말아야 되요.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언어라는 방편입니다. 언어에 대해서 눈가리고 국수주의 내리고 있으면 21세기에 큰 코 다칩니다. 나는 미술을 공부한 사람이니까 달 알지만, 미술은 당장 떨어져요. 그러나 우선 과학과 생물에서 떨어져요.
황 : 결국 세계는 하나라는 말씀입니까?
백 : 세계 각처에서 새 연구가 나오고 있어요. 이젠 미국인들도 일본어를 배웁니다. 일본어로 쓴 과학 논문이 많이 나오니까요. 또 미국에서는 일본 논문을 번역하는 팀이 생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는 순수만을 외치고 있어요. 이러다간 굶어 죽게 됩니다.
황 : 이미 말했지만, 이 것은 지나친 외세종속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어떤 반 작용일 수도 있겠습니다. 언젠가는 다시 선생님이 표현하신 국수주의적인 요소를 탈피하여 과학, 예술, 종교를 중용의 입장에서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백: 너무 듣기 싫은 말을 해서 미안합니다.
황 : 아닙니다.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