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March 31, 2008

시간에 대하여...


320만 년 전 루시의 기억을 작업으로 만들어내려니 끝없이 존재와 시간에 대해서 사유하게 된다. 그녀의 현대예술은 난해하기보다 사유하게 만드는 것이다.

최재은 작가라고 하면 언뜻 생소할 수도 있겠다. 그녀는 1976년에 도일해서 현재까지 일본에 거주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알고 보니 그녀는 해인사 성철 스님의 사리탑 설치물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삼성의료원 앞에 ‘시간의 방향’을 설치해 우주적 힘을 느끼게 한 작가였다. 여자의 몸으로 도저히 하기 힘들 것 같은 광대한 설치 작품은 애써 그녀에게 어떤 작가냐고 물어보지 않아도 그녀를 이해할 수 있는 작업이다. 그녀를 만나러 로댕갤러리에 갔을 때 작가가 일본에서 가져온 큰 설치물이 아직 여기저기 컨테이너 안에 담겨 있었다. 그녀를 따라온 일본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작품을 설치하고 있었고 그녀는 그 속에서도 멋진 니트 모자를 쓰고 사람들과 깊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최재은 작가를 이야기할 때 “아, 그 미모의 작가요?”라는 말을 먼저 하던 이들의 심정을 알겠다. 젊은 시절의 화려한 미모는 아닐지라도 그녀는 이제 고혹적인 미를 풍기는 중년 작가가 되었다. 그녀의 아직 설치되지 않은 작품들을 둘러보았는데 ‘이건 뭘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는 작품이 부지기수다. 현대예술은 어려운 건가? 그녀의 작품은 어렵다기보다 사유하게 하는 것들이다. ‘시간의 사유’라고 하면 어떨까? 그녀는 시간과 존재를 그냥 두지 않는 작가다. 그녀는 그 시간에 ‘루시’라는 이름을 붙였다.성철 스님의 사리탑 프로젝트나 삼성의료원의 ‘시간의 방향’은 참 웅장하고도 멋있어요. 초월적인 어떤 힘이 느껴지는데 선생님이 생각하는 시간과 존재란 그런 것인가요?성철 스님 사리탑은 이미지만 6개월을 생각했고 작업은 3년가량 계속했어요. 건축, 조형, 이미지를 함께 생각하며 만든 작품이죠. 우리는 시간을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존재의식에 대해서도. 가상과 현실을 왔다 갔다 하는 현실 속에서 정신이 온전하겠어요? 이렇게 힘든 세상인데 자기 존재를 잘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전시 제목을 ‘루시의 시간’이라고 붙였는데 루시의 시간은 무엇인가요?루시(최초의 인간 화석)는 320만 년 전에 인류가 존재했다는 증거죠. 런던의 박물관에서 루시를 보고 만들어낸 것이에요. 320만 년 전의 기억을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정말 흥분되는 일이죠. 루씨의 시간에 비하면 제가 작업한 시간은 정말 찰나죠.1986년부터 ‘월드 언더 프로젝트’ 시리즈를 하고 있는데 여전히 진행형인가요?저는 세계 곳곳의 땅에 종이를 묻고 다녀요. 현재 9개국에서 진행 중이죠. 종이는 곧 소멸되지만 그 흙에 존재하는 나무와 미생물은 그 시간의 결과죠. 시간 속에서 생겨난 산물 혹은 시간의 흐름을 관찰하기 위한 것이죠. 제가 다시 캐내니까 소멸은 아니죠. 시간의 개념을 표현하고 싶은 거예요. 생명체의 구조적이고 보이지 않는 세계 같은 것을.1980년대부터 조각, 설치, 사진, 영상 등 여러 장르를 다루고 있는데 현재 어떤 작업이 제일 흥미진진한가요? 선생님을 전방위 아티스트라고 불러야 할까요?작가는 표현 매체가 자유로워야 해요. 저는 그냥 미술가가 편해요. 단지 좀 에너지가 있다고 할까요? 그리고 자연을 좋아하죠. 전 좀 아날로그적이고 정신적인 것을 좋아해요. 작가는 그 사회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시간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이에요.1970년대 중반 일본으로 건너가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데 한국이 그립진 않나요? 유럽에 비해 일본은 특히 작가로서 유명해지기 힘든 나라라고 하던데요?밀라노에도, 뉴욕에도 나가 있었죠. 지금 어디에 거주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일본 문화라는 게 사실 긴장된 문화거든요. 조금 쿨하기도 하고. 요즈음은 그런 게 상관없어요. 어디에서 작업하든, 상황에 따라 이동하면서 사는 노마드족의 삶을 사는 게 당연하게 되어버렸죠. 일본은 1970년부터 1990년대까지 작가들에겐 참 좋았어요. 1995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 대표로 나가기도 했죠. 우리 민족은 판타지가 있는 민족이라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게 이상적이에요. 그래서 앞으로 좋은 작가들이 많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요.선생님이 추구하는 현대미술은 조금 어렵다는 평도 있어요. 사실 현대미술이 갈수록 난해해지는 것 같기도 해요.난해할 때는 난해해야 해요. 작품 앞에 많은 퀘스천 마크가 생겨나야 하지 않을까요?미술과 대중문화의 교감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예를 들어 조영남 씨의 작품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최근 힐튼 호텔에서 조영남 씨의 작품을 전시 중이다.)조영남 씨의 전시를 아직 보지 않아서 뭐라 말은 못하겠지만 재미있다는 것만은 사실이에요. 다양한 작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 사회가 그만큼 풍만하다는 것이에요. 시크할 수도 있고 난해할 수도 있고 유머를 전할 수도 있죠.선생님은 여느 여성 작가들과는 많이 다르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는데 혹시 여성의 정체성 등에 대해 작품으로 고민하기도 하나요? 사실 한국의 여성 작가들은 이런 주제에서 벗어나기 힘든 점도 있는데요.모든 사람이 다 하는데 왜 나까지 해야 할까요? 나는 많은 과학자하고도 관계를 맺고 있어요. 분해하거나 구조적인 걸 좋아해요. 어떤 면에서는 지리학적 측면도 있어요. 흙을 분석하고 주변의 모든 것을 연구하니까요. 루시가 지닌 시간을 생각해보세요. 제가 제작한 시간은 사실 중요하지 않죠. 그때도 우리가 존재했고 진화해왔다는 사실이 신비롭지요? 지금 이 공간은 도시 속의 정글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작가가 앉아 있는 로댕갤러리의 로비에는 작가가 설치한 새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그녀는 인터뷰 장소로 그곳을 택했다. 새소리를 듣고 있어야 마음이 편안해진다고.)예술가는 무모하다고 하는데 당신도 무모한 예술가인가요?그렇진 않다고 생각해요. 저는 상당히 예민한 편이에요. 작업할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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