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대한 한 작가의 생각 중에서...
이영훈개인전(Lee,Young-Hoon Solo Exhibition)
▌여기 저기(Here and There)사람들이 그 안에 살고 있으면서 결코 증명할 수 없는 것이 시공간이다. 그러므로 시간에 대하여든 공간에 대하여든 해석과 규정의 다양성이 성립할 수 있어서 이렇게 볼 수도 저렇게 볼 수도 있다. 비록 시공간을 확정할 수 있는 것이 불가능하더라도 체감에 따른 타당성은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감각을 통한, 시공간에 대한 어떤 견해가 전지적 보편성을 획득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리만 공간과 유클리드 공간, 로바체프스키 공간 등은 서로 독립적이듯 하나의 공간 얼개의 보편성은 다른 얼개의 공간 보편성과 양립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공간의 개별 얼개는 곧 시간 얼개의 다양성으로 이어진다. 시간은 곧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시공간 면모는 어떠할까? 양의 공간, 평탄공간, 음의 공간들은 유기적으로 얽혀 있으며 시간장 역시 그것과 궤를 같이한다. 이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개념틀이 제시하는 시공간의 소멸과 생성의 면모와 결합한다.시공간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변화하고 있다. 그에 따라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도 변화를 겪는다. 변화는 곧 살아있음이다. 그렇다면 왜 변화는 발생하는가? 라는 질문을 자연스레 던지게 된다. 단지 외부의 관계적 조건이 변하여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변화가 본질인가? 그러한 변화가 생길 수 있는 토대는 시공간의 불연속에서 비롯된다. 연속적이라 여겨지는 시간도, 공간도 기실 불연속이다. 그렇기 때문에 압축도 확장도 변화도 가능하다. 비어있는 것이 없다면 변화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줄어들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불연속 시공간은 양자요동으로 인해 맥동하여 시공간뿐만 아니라 삼라만상도 매순간 달라지게 한다. 그러므로 띄엄 띄엄 차있는 시공간과 비어있는 시공간은 요동성과 더불어 존재의 본질적 국면이다. 이미 현대는 이러한 시공간에 발을 디뎌놓고 있으며 날뛰는 시공간의 건너뜀의 조밀함과 희박함은 미래에 가게 될 곳의 모습이다. 해석과 규정의 다양성을 통해 이것을 드러내야 한다. 개념화된 생각의 장은 시공간에 대한 체험을 보편화된 인지로 바꿔주게 한다. 그것은 이미지화와 병행한다. 시대에 따라 나타나고 있으며 대두할 시공간에 대한 새로운 개념과 이미지화는 인간토대의 인식의 장을 생성하고 확장하기 위해 예술이 나아가야할 방향이며 내 작업의 도정이다.이영훈
▌여기 저기(Here and There)사람들이 그 안에 살고 있으면서 결코 증명할 수 없는 것이 시공간이다. 그러므로 시간에 대하여든 공간에 대하여든 해석과 규정의 다양성이 성립할 수 있어서 이렇게 볼 수도 저렇게 볼 수도 있다. 비록 시공간을 확정할 수 있는 것이 불가능하더라도 체감에 따른 타당성은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감각을 통한, 시공간에 대한 어떤 견해가 전지적 보편성을 획득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리만 공간과 유클리드 공간, 로바체프스키 공간 등은 서로 독립적이듯 하나의 공간 얼개의 보편성은 다른 얼개의 공간 보편성과 양립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공간의 개별 얼개는 곧 시간 얼개의 다양성으로 이어진다. 시간은 곧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시공간 면모는 어떠할까? 양의 공간, 평탄공간, 음의 공간들은 유기적으로 얽혀 있으며 시간장 역시 그것과 궤를 같이한다. 이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개념틀이 제시하는 시공간의 소멸과 생성의 면모와 결합한다.시공간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변화하고 있다. 그에 따라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도 변화를 겪는다. 변화는 곧 살아있음이다. 그렇다면 왜 변화는 발생하는가? 라는 질문을 자연스레 던지게 된다. 단지 외부의 관계적 조건이 변하여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변화가 본질인가? 그러한 변화가 생길 수 있는 토대는 시공간의 불연속에서 비롯된다. 연속적이라 여겨지는 시간도, 공간도 기실 불연속이다. 그렇기 때문에 압축도 확장도 변화도 가능하다. 비어있는 것이 없다면 변화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줄어들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불연속 시공간은 양자요동으로 인해 맥동하여 시공간뿐만 아니라 삼라만상도 매순간 달라지게 한다. 그러므로 띄엄 띄엄 차있는 시공간과 비어있는 시공간은 요동성과 더불어 존재의 본질적 국면이다. 이미 현대는 이러한 시공간에 발을 디뎌놓고 있으며 날뛰는 시공간의 건너뜀의 조밀함과 희박함은 미래에 가게 될 곳의 모습이다. 해석과 규정의 다양성을 통해 이것을 드러내야 한다. 개념화된 생각의 장은 시공간에 대한 체험을 보편화된 인지로 바꿔주게 한다. 그것은 이미지화와 병행한다. 시대에 따라 나타나고 있으며 대두할 시공간에 대한 새로운 개념과 이미지화는 인간토대의 인식의 장을 생성하고 확장하기 위해 예술이 나아가야할 방향이며 내 작업의 도정이다.이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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